월드컵 본선 추첨 행사 전야제의 1천명이 넘는 초대형 만찬장부터가, 우
리나라 아름다운 제2의 도시 항도 부산을 지구촌 단위로 부각(浮刻) 시키기
에 충분하였다. 해운대가 이렇게도 아름다운 곳인 줄은 필자도 미처 몰랐었
다. 이 행사를 부산해운대의 BEXCO에서 열도록 한 주최 측의 아이디어부터
우선 치하해 주고 싶다.
필자는 지난 70평생에 이 이상 더 어마어마한 규모의 행사를 접해본 일
이 없다. 만찬장서부터 황·백·흑인종들이 한꺼번에 와글바글 어울려 들
어, 이런 자리에 별로 익숙해있지 않았던 필자 같은 사람으로서는 자못 경
악스러웠다.
제프블래터 FIFA회장, 한·일 조직위원장, 국제 축구연맹 관계자들을 비
롯, 총 3천500명이 자리를 꽉 메운 본선 추첨 현장은 듣자 하니 전 세계 50
개국 이상에 생중계되어 총 10억명 이상이 시청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바로 그 순간, 우리 부산의 해운대 이 자리는 명실공히 '화합과
하나'를 향한 '지구촌 최고 절정의 꽃'이었다고 할만하다.
주최 측도 반년 후에 열릴 이번 월드컵 대회의 특색으로 지목되고 있는,
21세기 들어서 첫 대회라는 것, 우리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라
는 것,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동 개최라는 것들을 두루두루 깊
이 유념한 듯, 이번 본선 추첨에도 대대적인 문화행사까지 곁들여 클래식
과 팝을 절묘하게 배합, 멋을 더한 점도 플러스 알파의 효과를 충분히 내고
도 남음이 있었다.
축구를 통해서 '지구촌 화합과 평화'를 이뤄내자는 이 자리의 뜨겁고도
품격있는 열기는, 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전운(戰雲)이
나, 지난 '9·11테러'의 여진(餘震)까지도 말끔히 씻어낼 불씨로 싹을 틔
울 것으로 보인다. 조금 우스개 소리로 하자면, 저 빈 라덴이라는 사람도
이 자리에 초청을 했었더면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더구나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말고, 중
국과 사우디아라비아만이 선발된 점은 아쉬운 감도 없진 않지만, 그나마 요
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앞으로 서울에서 열릴 개막식에는 장쩌민 중국
주석도 직접 참관하리라던가.
그동안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중·일 관계가 삐그덕거리고 있었
던 것은 다 아는 터요, 바로 이런 어정쩡한 속에서의 이번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는 동북아시아에서의 3국 관계를 풀어내는 단초로도 활용되기를
기대하고들 있다.
그 점으로 말한다면, 현실적으로 아시아에는 오늘의 유럽에서 보는 바와
같은 지역단위의 공동체 의식이 매우 희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앞으로 그
것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하는 것이 식자층 간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
고 있는 마당에, 이번 이 공동개최를 통한 한일 파트너십부터 축구를 통해
실마리를 잡게 되리라는 점도, 30년전 탁구가 미국과 중국의 새관계를 여는
데 기여한 점을 되떠올리게 하며 기대가 모아진다.
이번 이 일을 계기로 최소한 한·일 간의 자유무역협정이 앞당겨질 것으
로도 평가되고 있고, 한·일 시장(市場) 단일화에의 꿈도 조심스럽게나마
현실적인 지평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지만, 지난 세기 전반기의 아픈 기
억들이 아직 생생한 마당에서는 일본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포부와 결의
가 굳건하게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한·일간에 경제 장벽이 제거된다면,
세계 GDP의 17.8%에 해당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월드컵 대회라는
이 큰 이벤트를 공동으로 성공시킬 때는, 한·일 피차간에 새로운 의식도
자신(自信)도 서게 될 것으로 기대되며 동북아시아에 명실상부한 새로운 지
평이 열리게 될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조 추첨식이 매우매우 세련되게 진행되는 속에, 그리고 2부로 나누어 벌
어진 꽉 짜인 문화프로그램도 처음으로 시도된다던 4개 화상(畵像)으로 흐
르는 동안, 필자는 두루두루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이런 생
각들이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무거운 생각들이나 아닌 것인
지 싶기도 하였다.
그런 정도로 스포츠 행사답게 누구나가 마음 편한 자리이기는 하였지만
16강이 어쨌느니, '죽음의 F조'가 어쨌느니 하는 데만 오로지 언론마다 관
심이 모아지고 있는 점은 필자로서 약간 저항감도 없지는 않았다.
물론 조 추첨 행사장에서 제1차적인 관심은 자기 나라가 어느 조에 속해
어느나라 팀과 맞붙게 되는가 하는데 있을 것은 그야 사람으로서 당연지사
였을 터이지만 바로 이점은 일반적으로 스포츠 행사라는 것에 부수적으로
따르기 쉬운 통속성이나 평판성(平板性)과도 곧바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아
닌가 싶어지기도 하던 것이었다.
월드컵 본선 추첨 행사 참관기
입력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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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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