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와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갔으나 우리에게 밀려오는 국내외 안팎의 파고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월드컵과 서해교전, 정치의 불안정, 게이트로 대변되는 뇌물스캔들과 의혹, 사회 전반적으로 들뜬 분위기들이 폭풍처럼 우리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폭풍의 실체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던 기본과 신뢰의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먼저 현재의 정치권은 국민들을 실망속으로 몰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따른 대립과 반목만 남아 있으며 국민을 불안스럽게까지 한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수십억원의 정치자금 등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리고 권력 핵심부의 최상층 고급 관료들이 비리와 게이트 등에 연루된 혐의로 줄줄이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국민들의 심정은 이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후반기 국회는 의장단만 구성했을 뿐 개원조차 못하고 공전하고 있다. 의원들끼리의 감투와 자리싸움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이 저질스런 쌍소리까지 해가며 품위를 잃고 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변화를 기다렸던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방의회는 국회보다 더 심한 내홍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모두 같은 원인이다. 정치는 조화와 타협의 산물이며 국민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민생은 뒤로한 채 이전투구에 급급하고 있어 걱정이다.

서해교전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논란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북한함정이 우리 영토를 침범, 함포사격으로 아군측 군함을 침몰시켰는데도 구체적 대응이 없다.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대북노선에 대한 일부의 비판만 가해질 뿐 구체적인 방안이 현재로선 없다. 국론까지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이를 책임지는 이도 없다. 도발자체의 의도성 여부만이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어 더욱 문제다. 중요한 것은 북한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해 우리 군의 사상자가 24명에 이르고 있고 군함이 격침됐다는 점이다. 정부나 정치권이나 이 부분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책과 방안없이 허둥거리고 있어 국민들만 불안하다.

여기에 사회 전반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도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뜬금없는 교통관련 사범에 대한 대사면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어제 그제 국무회의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자 벌점 등에 대한 특별 감면조치를 의결, 발표했다. 지난 1998년의 532만명을 비롯해 이번 481만명 등 모두 1천13만명이 혜택을 받았다. 조치의 배경은 월드컵 4강 신화의 국민적 축제분위기 고양을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우리는 바로 그 때문에 정부의 시혜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축제분위기는 전국민의 자발적인 질서의식이 꽃피워낸 소중한 결과였는데 이번 조치로 그 의미가 상당히 감소될 것으로 보여 아쉬움이 크다.

이와함께 인기영합주의는 또다른 부작용을 잉태하고 있다. 다름아닌 주 5일 근무제로 인한 후유증이다. 근로의욕을 해이하게 만들고 낭비를 확대하는 역기능이 예상되고 또 그럴 가능성이 벌써부터 엿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 전체가 월드컵 대회의 흥분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제도가 시행돼 '노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가 그 나라를 어떻게 멍들게 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어 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일치단결된 민족의 무한한 힘을 전세계에 보였다. 그러나 소모적인 정쟁과 인기주의가 판을 친다면 국가의 기본이 흔들릴 수 있으며 나락의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개개인이 다소간에 흐트러졌다면 다시 한번 생각을 고쳐보자. 그리고 요구하자. 정치권이 잘못됐으면 질타하고 위정자들의 정책에 미스가 있으면 바로 잡도록 충고하자. <송인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