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인사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여론은 으레 그들의 면면이 어떤지,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어떤 인연을 맺어왔는지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출신학교, 출신지역도 흥밋거리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한테는 정치형인지 실무형인지, 개혁을 중시했는지 안정을 중시했는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다 소용없는 일이다. 장관 중에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일 년이 지나면 대부분이 바뀌게 될 것이다. 전 정권때도 다 그랬다. 밑에 공무원들은 새 장관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느라 몇 달 보내고, 업무보고 준비, 장관순시계획 수립, 지시사항 정리, 보도자료 작성 등 국민과는 관계도 없는 일만 하다가 또 새 장관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조직은 표류하고, 국민은 피곤하다.
언제까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인가. 장관의 임기를 최소 2년간 보장하자는 주장도 있다. 지켜질 수만 있다면 그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임기가 정해진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의 임기도 지켜지지 않는데 장관의 임기보장이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전환기적인 대통령제 정부 하에서 장관은 어차피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좋은 방법이 있다. 장관 대신 차관을 중심으로 한 부처 운영방식을 채택하면 된다. 장관은 정치적, 대외적, 의전적 업무만을 맡게 하고 실질적인 부처 통할에 관한 권한은 차관에게 맡긴다. 차관은 일정 기준의 경력과 자격을 갖춘 자 중에서 다면평가, 장관 추천, 중앙인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일정기간 소신 있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장관과 차관은 상하관계이면서 동시에 수평적이고 보완적인 관계에서 업무를 추진하게 하는 것이다. 소위 분권형 장관제가 되는 것이다. 내각제 국가의 일반적인 정부 운용 방식이다.
이러한 방법은 다른 산하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정권교체기만 되면 산하기관장의 인사가 도마 위에 오른다. 낙하산 인사니, 나눠먹기 인사니, 논공행상이니, 싹쓸이니 하는 단어가 귀에 따갑다. 개선되기는 해야 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조차 “전리품은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도 편중인사니, 제사람 심기니, 선심행정이니 하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문제가 대통령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말면, 개선방안은 오직 세월밖에 없다.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의 잘못이라기보다 시스템의 잘못이다.
부기관장을 제대로 뽑고, 그들에게 충분한 권한과 책임을 쥐어주면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된다. 차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경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을 일정한 검증절차를 거쳐 임명한다. 3년 정도의 임기를 보장하고, 그에게 인사, 예산, 조직, 계획 등 주요 업무를 분장시킨다. 어차피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기관장과 사무적인 부기관장이 업무를 나누어 갖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OECD 선진국들이 대부분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시 행정관(city manager)은 시장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그에게는 보통 시장의 임기보다 긴 5년 정도의 임기가 보장되며, 실질적인 조직 통할권이 주어진다. 자치단체장이나 의회에 대한 신뢰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면 중간에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searching committee)를 둘 수도 있다. 일부 민선 자치단체장의 횡포가 심하다고 부단체장을 중앙에서 임명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잘못된 자치제도를 만들어 놓은 중앙에 책임이 있다.
문제는 방법에 있지 않다. 찾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의지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정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의지와 용기를 가질 필요도 없다.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한두 사람이면 족하다. 인수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이철규 경기개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