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인일보에서 수도권 난개발 문제를 다룬 기획기사를 보노라면 여러 모로 공감대가 크다. 김대중 전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수도권 등지에서 난개발로 인해 훼손된 산림이 여의도 면적의 24배나 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환경파괴, 교통난, 교육 및 기반시설 미비 등 주민들이 겪는 고통도 가중되어 수도권 난개발은 커다란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최근 구(舊) 도시 단독주택 밀집지역의 난개발로 인한 보행권 문제이다. 구 도시의 보행문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차량들이 이면도로는 물론 인도에도 버젓이 주차해 보행을 가로막곤 한다. 심지어 아이들 놀이터나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차량들이 점거하여 어린이들의 놀이공간마저 뺏고 있다.
주택가 골목길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면도로나 골목길의 차량통행 또한 급증하여 보행자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마땅한 인도가 없는 이면도로를 걷노라면 느닷없이 뒤에서 차량이 출현하여 경적을 울리거나 가속 페달을 밟아 보행자를 경악케 한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재빨리 피하지 않으면 보행자를 길가로 밀어붙이는 등 생명을 위협하거나 운전자가 욕설을 하며 내뺀다. 도대체 보행자들이 맘 편히 걸을 수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젠 구 도시의 이면도로를 보행하려면 생명을 담보해야 한다. 직접적인 원인은 엄청난 차량증가 때문이다. 요즘에는 “남의 집에 월세를 살아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사고가 일반화되어 전국의 차량등록대수가 1천400만대를 돌파, 국민 3.3명당 차량 1대 꼴이다.
단독주택의 증·개축 패턴 변화도 보행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 요즈음 구 도시에는 다가구, 다세대주택 건설이 유행이다. 외환위기 이후에 특히 두드러지고 있는데 신축주택이 들어설 때마다 골목길은 점차 비좁아진다.
거주자우선주차제도 보행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자체들이 보행자는 고려하지 않은 채 주차 편의와 수입 증대(?)만을 목적으로 서둘러 우선주차제를 실시, 대부분의 이면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상점들의 불법적인 물품 야적과 포장마차, 노점상들도 보행을 방해하고 있다. 이면도로는 교통단속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흔해빠진 감시카메라나 카파라치도 없다. 도로 폭은 상대적으로 협소해진 터에 차량통행은 과거보다 빈번해져 보행자들이 받는 정신적, 물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차량들의 천국이자 교통사각지대로 변해 교통사고도 점증하고 있다. '서울시 보행우선지구 제도운영방안'에 따르면 2001년 서울의 교통사고 사상자는 총 4만5천255명인데 보행 중 사고는 26.9%인 1만2천177명이다.
사망자 507명 가운데 보행 중에 사고를 당한 비율은 53.4%인데 이 중 74%가량이 주택가 생활도로에서 발생, 전국 평균 39.2%보다 월등히 높다. 또한 이 수치는 일본의 28.4%, 미국 11.3%, 네덜란드 9.8%에 비하면 경이적이다. 이러니 '대문 밖이 저승'이랄 밖에.
지난 겨울에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의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서울의 문화와 도시환경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이 학생들은 “한국은 보행자보다 차량을 우선시 하는 자동차문화 후진국”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교통사고야말로 우리 나라 최대의 재난(災難)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막대해 생명보험회사들이 빈사지경에 있다.
차량보다 보행자를 우선 보호하려는 식의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구 도시 난개발에 염증난 사람들의 신도시로의 엑소더스는 앞으로도 줄을 이을 것이다. 따라서 구 도시 주변의 난개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난개발 악순환이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많이 보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노무현 정부가 등장한 만큼 조만간 모든 국민들이 쾌적한 보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이한구(수원대교수·경제학)
구(舊)도시 난개발에 멍드는 보행자
입력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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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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