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위상이 하늘과 땅인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약간 남아있다. 지방사무관인 시골 면장이 국가사무관인 청와대 직원을 만나면 왠지 작아지지 않을 수 없다. 도청의 서기관이 검찰청 주사 앞에 서면 고양이 앞에 쥐다. 도지사도 중앙에 올라가면 장관실에 들르기 전에 과장실, 국장실부터 들른다.

그러나 옛날 같지는 않다. 권위주의 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가 수직관계 내지 신분관계였다면 지금은 수평관계요, 업무관계이다. 도지사는 당당히 장관과 토론하고, 대통령과 우스개를 한다. 도의 국장도 중앙의 회의에 가서 중앙 나리들을 상대로 할 말은 한다. 지방공무원이 아직도 중앙공무원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신분차이 때문이 아니다. 권한이 중앙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신분이 아니라 권한의 집중과 불균형이 문제다.

교원의 지방직화 논쟁이 뜨겁다. 정부당국은 지방직화를 밀어붙일 태세이고, 교원쪽은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다. 올 상반기 중에는 무슨 사단이 벌어질 조짐이다. 논리적으로는 교원들의 주장이 궁색한 듯하다. 국가공무원으로 들어왔는데 지방공무원이 웬 말이냐고 반발하지만, 제도가 바뀌면 국가공무원도 지방공무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불이익한 변경도 아니다.

교원의 지방직화는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교육법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지방직화가 된다고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떨어지는가. 지방공무원이 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인가.

대통령 임명장이 그리도 중요한가. 25만 지방공무원이 들으면 분개할 일이다. 지자체의 재정형편에 따라 교원의 보수가 달라질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진정한 교육자치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유감스럽게도(?) 달라지지 않는다. 보수규정이 대통령령으로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지방적 업무가 아닌가. ‘교육일선’이니 ‘교육현장’이니 하는 말이 흔히 쓰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따라서 교원의 지위를 지방공무원으로 바꿔 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과 교원단체와의 논의는 진척이 없다. 진척은커녕 갈등의 골만 깊어간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정부와 국민의 사이가 벌어지는 이유는 신뢰관계의 붕괴에 기인한다. 신뢰의 회복은 정부의 몫이다. 그동안 국민과의 신뢰를 깬 것은 정부이기 때문이다.

교원의 지방직화 문제도 그렇다. 교원들은 오랫동안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왔다. 조석으로 바뀌는 정부정책에 휘둘려 왔다.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무슨 수모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일방적 지시와 추종을 요구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귀담아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몇 마디 하다가 귀찮다고 돌아서는 태도로는 안 된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어서도 곤란하다.

일부에서는 “교원 임용 관련 사무가 지방으로 넘어가더라도 교원의 신분은 그냥 국가공무원으로 남는다. 임용·전보 권한만 넘어간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참으로 해괴한 논리이다. 그렇게 바꿀 바엔 안 바꾸는게 낫다. 희미하고 미봉적인 자세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교원의 지방직화는 교육자치의 첫걸음이다. 지방직화는 교육자치의 정착과 인사행정절차의 간소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확실하게 설파하라. 지방직화하면 곧 기간제교사로 대치되고, 최악의 경우 전공 이외의 과목을 가르치는 상치교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그들의 우려를 불식시켜라. 지방공무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지방에의 봉사를 숙명으로 알고 살아온 지방 공직자들을 참담하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교육당국의 열정과 소신이 보고 싶다. 지방공무원은 3D업종이 아니다./이철규(경기개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