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에 소훼란파(巢毁卵破)라는 말이 있다. 보금자리가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것이다. 국가나 집단의 불행이 있으면 국민이나 구성원들도 함께 불행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복소무완란(覆巢無完卵)’이 있다. 동한(東漢)말년 헌제(獻帝)때 공자(孔子) 20대손인 공융(孔融)은 당대의 유명한 문인이었다. 당시 실세였던 조조(曹操)가 50만 대군을 몰고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을 치려하자 공융은 이를 반대하면서 몇 마디 불평을 내뱉었다. 이에 화난 조조는 공융 일족을 모두 죽이라고 했다. 병사들이 공융의 집으로 몰려올 때 당시 9세와 8세이던 나이어린 두 아들은 태연스레 장기를 두고 있었다. 주위에서 빨리 피하라고 재촉했으나 그들은 “복소지하(覆巢之下), 안유완란(安有完卵)”(새둥지가 뒤집히는데 알이 어찌 깨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결국 그들은 장기를 다 두고 아버지와 함께 잡혀가 처형당했다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의 빈곤율이 최소 6%에서 최고 20%까지, 빈민의 수는 최소 300만명에서 1천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용불량자 수는 올 8월 현재 33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고도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또 IMF의 위기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회 구성원들이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의 빈곤층이 두 배 이상 늘어나 1천만명을 넘어선 이후 경제위기를 벗어났다는 정부의 발표가 무색하게 아직도 국민 5사람 중 1사람이 법정 최저생계비 기준인 월소득 36만원에도 못 미치는 빈곤층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 10명중 7명이 비자발적 실업에 처해 있다니, IMF를 지내며 지난 몇 년동안 우려해 왔던 전망들이 이제는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주부가 자녀 살해 후 투신자살한 사건이 우리의 안방에까지 전달되어 전율을 느끼게 하더니, 용인에서 어머니와 아들을 목졸라 살해하고 아내마저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가장이 붙들렸다. 20~30대 젊은 층의 자살이 일어나는 등 연일 카드빚으로 인한 소동이 일고 있다. 생활고를 못이긴 10대 소녀가 원조교제에 나서고 있고, 20대 여대생을 납치하여 돈을 받아낸 후 살해한 것도 바로 얼마전에 일어난 일이다. 개인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가 더욱 커져가는 이른바 ‘20 대 80사회’라는 소득 양극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회의 상위 20%는 잘 살고 나머지 80%는 더욱 빈곤해지면서 ‘빈곤의 고착화’ 또는 ‘빈곤의 세습화’가 촉진되고 있지 않나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갔다.
정부는 분배구조 악화와 중산층 몰락을 절대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빈부격차 확대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생존형 범죄의 증가와 가정파괴, 개인파산 등 사회병리현상을 촉발하게 된다. 이것이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지면 국가사회발전의 역동성을 잃게 되며, 빈부계층간의 위화감은 경제회생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회적 갈등에서 우리는 심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노사정간 양자 혹은 3자간의 극한 대결, 금융노조 등 각종 이익집단의 집단이기주의가 한때는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는 위협적인 상황까지 치닫기도 했다. 또한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는 무감각한 행태와 맥빠지는 모습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의 망신살,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구태, 특검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국회와 정부간 코미디, 새만금 사업, 방사선 핵폐기물 소동 등 온통 이기주의에 휩싸여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부는 무엇하는 기관인가 등의 물음에 이제 소위 정치지도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과 선의의 제삼자, 그리고 힘없는 무조직 시민들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분명 국가의 과실이며 책임져야할 일이다. 국민참여와 통합, 그리고 경제의 재도약은 분명 우리의 당위적 과제임에 틀림없다. 실사구시를 표방한다는 정부에서는 이를 위한 실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층이 튼튼하지 않으면 경제가 바로 서지 않는다. 먼저 우리의 민생을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국민을 위한 사회안전망(safety net)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미국이 망한다면 그것은 인종문제가 아니라 분배문제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이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임수복 연세대 교수·행정학박사>임수복>
정부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입력 2003-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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