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의 하나인 영국의 ‘피치’가 지난 16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 것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분분했다. 경제성장률을 그렇게 낮게 전망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요인들로서는 소비 위축, 불안한 노사관계, 설비투자 부진을 꼽았다. 이러한 요인들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거론돼온 것들이다.

한국은행 총재도 “경쟁국에 비해 임금이 비싸고 노사문제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등의 고비용 구조가 문제이며 이를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고, 재벌 기업들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소에서도 “화물연대 파업 등 노사분규가 경제 불안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들이었다.

그러나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의 노사분규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여 41%나 줄어들었고(209건→123건), 노사분규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65%나 줄어들었다(77만7천590일 →26만9천783일). 이러한 추이는 올해 내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금년 상반기에 발생한 직장폐쇄 건수는 작년 1년 동안 발생한 직장폐쇄 건수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통계가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직장폐쇄 건수가 작년과 비교하여 늘었거나 최소한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직장폐쇄란 노동조합의 노동쟁의에 대항하는 기업의 쟁의 수단으로서 노동법에 규정된 기업 방어권의 하나이다.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기업은 그에 대응하여 직장폐쇄란 강수를 둠으로써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의 양적 지표가 뜻하는 질적 변화의 내용은 무엇일까? 노동쟁의 건수가 41%나 줄어들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예년보다 목소리를 낮추고 온건한 활동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쟁의로 인한 노동손실일수가 65%나 줄어들었다는 것은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의 노사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오히려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쟁의 건수가 줄어들었음에도 기업의 직장폐쇄 건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예전보다 매우 공격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노동자들의 요구는 예년보다 훨씬 더 온건하게 바뀌었으나 기업의 노무관리 방식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노사관계 실상의 한 측면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노동쟁의가 절반이나 줄어들었는데도 외국 신용평가기관과 우리나라 정책 담당자들, 기업 경영자들, 국민 대다수는 계속 불안정한 노사관계가 경제성장의 중요한 걸림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수 개혁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것만으로 사람들은 우리 사회 개혁이 지나치게 앞서나갔다고 느끼는 것이다. '친노동자적인(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으나)' 개혁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는 바람에 우리 사회 노동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졌다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대통령이 세련된 말씨로 노동조합을 자주 비난하고 언론은 이를 부풀려 보도함으로써 실제보다 과장된 불안감을 사회에 조성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일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을 안심시키거나 노동자들을 억제하는 효과를 불러올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부와 경영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국의 투자자들에게도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할 일이다./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