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사고소식 가운데 유난히 자살에 관한 뉴스가 많은 요즘이다. 살기가 어려워서인가, 세상이 각박해져서인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사례는 너무 흔해 이젠 뉴스 축에도 못 든다. 뭐니 뭐니 해도 최근 우리 주변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지난 8월 초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이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돌보지 않는다며 목숨을 끊은 노부부에서부터 아내의 가출을 비관하여 자녀와 함께 자살한 가장, 시험을 잘못 보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한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자살을 택하는 이들의 연령과 사연은 남녀노소, 학력의 고하, 재산의 유무를 막론하고 각인각색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동반 자살하는 사례나 쟁의와 관련한 노동자들의 자살 사례까지 급증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세계 인구 중 하루 평균 36명, 시간당 1.5명이 자살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인구 10만명 당 20명 선을 넘고 있다. 이는 헝가리,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살증가율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한때는 자살을 미화하는 시대도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성악가인 윤심덕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져 동반 자살한 사건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1991년에 제작된 영화 '사의 찬미'의 소재로 다시 부활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자살은 문학이나 철학, 예술적으로는 물론 사회학적, 정신의학적으로도 늘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 역사에서 볼 때, 불의와 맞서 결연한 의지로 목숨을 끊는 것은 '자결'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자결은 의롭고, 용기있는 행위로 평가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려 중엽인 1193년(명종 23), 경상도 운문(雲門), 초전(草田)에서 봉기한 김사미(金沙彌)와 효심(孝心)의 토벌을 위하여 대장군 전존걸(全存傑)이 급파되었다. 그런데 토벌대의 장수 중에는 당시 막강한 무인 집권자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李至純)이 있었다.
이의민의 고향이 본래 경주였던 관계로 이지순은 평소부터 연고가 있던 자들을 통해 인근 지역 역도(逆徒)들에게 토벌대의 기밀을 누설하고 대가(代價)를 받아 챙겼다. 따라서 토벌대의 작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뒤늦게 이를 안 대장군 전존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존걸을 일컬어 지혜와 용기가 있다고 하였지만 후세의 사가(史家)는 이는 비겁한 행위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이야기는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상세히 실려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자살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공격성 혹은 복수심의 표현이라고 한다. 정신적으로 심한 혼돈 상태에 빠져있는 젊은이에게서 거의 의식차원에서 느껴지는 살인적인 분노가 반전되어 자기 자신과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상대방을 죽이는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이다. 첫째, 끝까지 맞서 싸워 극복하는 경우, 둘째, 체념한 채로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이 삶을 포기하고 목숨을 버리는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탐험가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용기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탐험가들의 경험을 통하여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박옥걸(아주대교수·사학과)
자살을 막을 수 있는가
입력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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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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