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이면 우리나라는 고속철도의 시대를 맞게 된다. 고속철도의 등장은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교통혁명'은 서울과 지방간 지리적·산업적 격차를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생활, 문화분야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4시간10분이 걸리던 서울~부산간 이동시간이 2시간40분이면 가능해지고 2010년 완공 예정인 2단계 공사인 대구~경주~울산~부산구간이 완료되면 1시간 56분으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게 된다. 서울에서 천안(76.8㎞)은 34분, 대전까지는 49분, 동대구는 1시간39분이면 도착한다. 광주·목포도 각각 2시간38분, 2시간58분이면 갈 수 있다.

이와함께 충청, 영남, 호남 등은 교통혁명을 지역개발의 기회로 삼고 있다. 고속철 정차역인 부산, 대전, 전북익산, 경북경주, 충남 천안 등을 중심으로 역세권 개발이 가속화 되면서 서울과 연계성을 갖는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건설업계는 물론 지자체에서도 고속철 정차역 주변으로 아파트, 주상복합건물을 건축하는 등 역세권 개발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렇듯 고속철도 개통에 발맞춰 수도권이 아닌 각 지방 도시들이 역세권 주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 경기도가 지난 27일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는 “2020년까지 수도권내에 500만 가구의 주택이 필요하고 이 가운데 300만 가구가 도내에 건설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중 100만 가구를 재개발로 잡더라도 최소 200만 가구의 신규 주택건설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를 위해 자족기능을 갖춘 분당 규모(10만 가구)의 신도시 총 20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경기도 전역을 7개 성장관리권역으로 나눠 각각 특성에 맞게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꾸준한 택지 개발과 공단건설 등으로 경기도 일대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인구를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동안 서울주변이 계속 도시화 되면서 발전되어 왔다는 기대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그 동안 경기지역은 서울과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것이 많은 인구유입과 공장들을 유치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돼 왔다. 이로 인해 경기지역 주민의 재산뿐만 아니라 도 자치단체 재정도 어느 정도 득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4월부터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국민들의 삶의 양식이 크게 변화할 것이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복잡하고 생활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과의 접근 용이성이나 수도권이라는 프리미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 동안 경기도는 수려했던 자연자원을 주거용 아파트단지나 공장지대로 바꾸면서 일정한 부를 누렸지만 앞으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되면서 사람들은 보다 쾌적한 생활을 위해 더 먼 거리의 지방으로까지 행동반경을 넓힐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 고속철도를 도입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파리와 마드리드로부터 2~3시간 거리의 지역으로 많이 이주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소득, 지식인들이 보다 쾌적한 생활을 위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발되지 않은 자연 속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제 경기도는 고속전철 개통 이후 나타날 움직임을 예견해보면서 수도권 자치단체나 주민들은 사려 깊게 생각해서 더 이상의 자연훼손에 제한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우려했던 바이지만 경기일원의 지역주민, 공무원, 지방의회에서는 무조건 도시화 개발보다는 보다 많은 정신근로자, 지식근로자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문화, 환경, 교육 등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살찌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지역발전은 사람을 불러모으는 시대에서 자연을 되찾는 시대로 개발의 패러다임이 변해가고 있음을 잊지 말자. /엄길청(경기대교수·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