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필자의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기에 오랜만에 학교구경도 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자라서 졸업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해 졸업식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로 간신히 아이를 찾았을 때에는 졸업식은 이미 끝이 나고 여기 저기에서 가족들 중심으로 사진 촬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러 개의 계란이 날아오고 우리 아이는 이미 머리부터 바지까지 흰 밀가루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눈만 말똥말똥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다른 몇몇 아이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얼마나 공부에 찌들려 있다가 이제 해방된 느낌으로 이런 신나는 난장판을 벌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안쓰러운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다.
서울의 어느 고교 졸업식장에서 찍은 사진하나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교복을 예쁘게 입은 여학생들이 졸업식 도중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시락 준비를 위해 새벽잠을 설치시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고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잠깐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을 때 담요를 가져와 슬며시 덮어주시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이 머리를 스쳐 지나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 탈 없이 한 인격체로 자라나게 해주신 선생님에 대해서도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을 것이며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도 감사 드렸을 것이다.
지난 겨울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남들이 다하는 과외수업을 받지 못한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계절 학교를 열어 영어, 수학을 가르칠 계획을 세우니 뜻있는 좋은 선생님 11명이 자원 봉사를 신청해 왔다.
교실도 꾸미고, 학생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준비도 완벽하게 하면서 한편으로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려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도 연구해 두었다. 그런데 등록 마감일에 우리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일들이 발생하였으니 계절학교 무료 수업에 등록한 학생이 고작 6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나마 한 아이는 등록하자마자 가출 후 부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떠나버렸고, 또 그 떠나버린 친구를 찾아서 돌아오겠다던 아이도 한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으니 할 수 없이 11명의 교사가 4명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은 시작되었지만 처음부터 공부를 해 보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엎드려 자는 아이,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리는 아이, 무언가 불만이 가득하여 묻는 말 조차 대답하기 싫어하는 아이들뿐이었으며 이들의 머리에는 '우리는 아무리 공부해 봐야 희망이 없다' '어차피 다른 아이들의 들러리 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실컷 놀도록 내버려두지 왜 저 선생들은 열심히 가르치려고 고생만 하고 있을까?' 등등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열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같이 뒹굴고, 같이 자면서 꿈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노래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 마음의 벽이 하나, 둘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과는 무언가 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부산에 돈 벌러 갔던 아이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초췌해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니 계절 학교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땀 흘려 일구어낸 보람과 긍지로 똘똘 뭉치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선생님과 아이들도 하나가 되어 밤을 꼬박 새면서 공부에 전념하며 내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얼마 후 계절 학교 졸업생 아이들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전달되었는데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서동영(분당포럼 대표)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
입력 2004-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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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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