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라”는 요구를 했다. 한국 정부와 연례정책협의를 가진 뒤 발표한 '한국경제 주요 현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과도하게 비정규직화하고 있는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게 재벌을 개혁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집단이 한국 땅에 들어오면 진보적 요구를 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한 마디로 한국 경제 체제가 시장경제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지나치게 자본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걱정하거나 한국 국민의 복지를 고려해 그와 같은 요구를 할 리는 없다.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자신들의 초과이윤이 확보되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가 OECD 30개 회원국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가장 높고 “2002년에 이뤄진 신규고용의 70%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이중구조의 한국 노동시장은 2003년 한국 경제를 저해했고, 향후 발전도 제약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줄이기 위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라는 내용의 '2004년도 단체협약 체결 지침'을 산하 4천여개 사업장에 배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채용시 노사가 합의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거나,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에게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라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도록 권고했다.
뿐만 아니라, “노사정이 합의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의 취지를 고려한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를 개선할 때에는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조정하고 고용유연성을 전제로 할 것을 검토하도록 주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때에는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지금보다 낮추고,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지금보다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1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미화원, 위탁 집배원, 조리종사원, 사무보조원 등을 공무원으로 전환하거나 직종에 따라 정년을 두는 '정년제'와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자동 계약갱신제'를 도입해 신분 보장을 유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규 공무원의 60% 가량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의 급여 수준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새삼스럽게 정규직화가 검토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고용형태가 정규직이었으니, 이러한 계획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노동부의 이러한 제안은 정부의 일부 부처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민간부문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해 신중론을 제기하는 바람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민간 부문에 파급될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책임있는 비정규직 대책안을 만들어 그것이 민간부문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유익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금보다 더욱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경총의 지침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원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해롭다. 오로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기업의 이익이 곧 나라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비정규직·IMF·경총·노동부
입력 200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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