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기 조절 정책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 동안 세계 경기의 흐름에 한발 뒤에 처져있던 우리 경제는 이번 충격으로 자칫 아예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때마침 진보적인 여당의 출현으로 성장과 분배에 대한 정책의 우선 순위를 놓고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던 상황에서 닥친 이번 충격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충격으로 나타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려의 강도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어떤 경제 문제든 소리 없이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문제는 없다. 그 이전에 여러 가지 형태나 모습으로 신호를 보내고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다. 중국의 경기가 과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고, 장기적으로는 그런 속도나 모습으로 중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은 전문가라면 일찌기 짐작했던 점이다.
하지만 지난번 중국 고위당국자가 경기의 속도조절 필요성을 얘기하자, 우리 국내 반응은 정부나 언론이나 또는 시장의 전문가들이나 모두 큰 문제가 아닐 것으로 가볍게 넘기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만 해도 여러 가지로 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미국의 국내외적 정치상황을 들어 그럴 가능성을 낮추어 보는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럼 왜 우리는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너무도 분명한 악재의 등장을 심각하게 대비하지 않았을까.
당시 국내 증시는 연일 오름세를 타고 있었고,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어 이런 불리한 신호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평가절하하려는 분위기가 그 주범이다. 게다가 국내 경제정책당국자마저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1% 이상 추가상승으로 보고 있었으니 이런 불길한 우려에 대한 대비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시장 경제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장 참가자들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서로 다양한 생각과 행동으로 서로 다른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보는 데 있다. 그래서 그런 생각과 행동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를 조정하는 또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예상이 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참으로 단정적이고 획일적이다. 좋으면 한없이 좋다고 그러고, 나쁘면 아예 기대도 걸지 않는 단세포적인 신드롬이 깔려 있는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변고가 생기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드는 편이다.
이번 경우만 해도 현재 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현상이나 원자재 가격 인상은 결코 지속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지속되어서도 안될 일이다. 이런 일을 그대로 방치하면 10리를 더 가려고 100길을 포기하는 경우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당장 경기를 살려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사회이고 보니 10리가 아니라 5리만 더 갈 수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힘을 다 소진하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한번 침착하고 차분하게 먼 길을 갈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우선 국내의 제반 생산원가를 낮추는 일에 힘을 모아보자. 여기에는 근로자 기업가 자본가 정부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일본이 다시 '일본에서 만들자”를 외칠 수 있는 것도 다 생산원가에서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들의 사업구조도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이동할 때이다. 언제까지 높은 재료비에 에너지 및 물류비를 감당하고 기업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국민 역시 이제까지의 숙련된 기능형 근로자에서 창조적 근로자로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여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본다. 달리는 말에서는 신발끈을 고쳐 매기 어렵지만 정지된 말에서는 안장도 고쳐 앉을 수 있다. 경제가 이번 충격으로 좀 더 힘들어지고 조금 더디게 간다고 불안해하고 조급해 하기보다는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알면서도 못한 해묵은 숙제를 여기서 풀고가자는 큰마음을 먹을 때라고 본다.
부디 이번만은 참고 기다리면서 한번 성숙한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자. /엄길청(경기대 교수·경제평론가)
차분하게 대응하자
입력 200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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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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