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소위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됐고 이달 22일까지는 경찰의 집중단속기간이다. 통상 '성매매특별법'이라고 명명되는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이 제정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군산 성매매집결지에서 화재가 났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창문은 쇠창살로, 출입문은 자물쇠로 밖에서 굳게 잠겨 있는 한 평 반짜리 방에서 여성들이 탈출하지 못한 채 몰살당했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사건 당시 관할경찰이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감금 등 인권유린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에 대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확정, 그 날의 참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결국 성매매 방지법은 성매매 여성들을 지배·관리·착취하는 성매매 업주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인권을 유린 당하고 있는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자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누구든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 이후 상황을 보도하는 각종 언론의 태도나 이를 바라보는 일부의 인식이 법의 의미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신문이나 TV에서는 “성매매 방지법 시행으로 은행업계나 위스키 시장 업계 등이 타격을 입고 있다”거나, 심지어 “기생관광 산업이 위축되어 여행업계까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착취하여 지금껏 누려온 불법적인 경제 이익을 국가나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호해야 한다는 것인지 화가 치민다. 심지어 모 국회의원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성매매 방지법 시행으로 인해 미혼남성들이 성관계를 가질 기회가 없어져 버렸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매매 단속을 사려깊게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하니 그 성의식의 수준이 개탄의 단계를 넘어선다. 물론 기존에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던 상당수의 여성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지원할 충분한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업주들이 경제적 손해를 면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지급하였던 선불금(성매매 여성들은 급여 대신에 미리 차용금 형태로 거금의 돈을 받는 경우들이 많다) 반환을 독촉하면서 폭행·협박을 일삼는 바람에 피해여성들이 업주들의 음성적인 성매매 강요에 응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자살까지 고민하게 되는 현실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성매매 문제는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이 부분에 대해서도 필자는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자신의 몸을 파는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피해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기 보다는 그들의 도덕성을 비난하거나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필요악이 아니냐는 막연한 회의론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선불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업주들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당한 몇 건의 사건들을 변호하며 필자가 만난 여성들은 나의 평범한 동생들이고 이웃들이었다. 어린 시절 가출 이후 있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한 번 발을 잘못 들여놓아 '선불금'이라는 사슬에 묶이게 되고, 몇 년간 이 업소, 저 업소로 팔려 다니다가 겨우 도망쳐 나와서도 사기죄라는 명목으로 재판을 받거나 심지어 구속되기까지 하는 여성들. 그들은,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들어가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앳된 소녀들이었다. 필자는 지금 집회 현장에서 생존권을 주장하고 있는 여성들도 간절히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나의 동생이고 이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을 책임지고 보듬어 주기 위해서는 성매매 방지법의 엄중한 시행 및 성매매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싸움은 당연한 것이라고 믿는다. /손난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