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이란? 아주 친숙하고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말임에도 막상 이 질문을 받으니 대답은 잘 모르겠다. '건강하다', '건강하지 않다'는 기준을 어떻게 세울 지부터 막연하고, 어떤 구성원들로 조합된 공동체를 가족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뭐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가정폭력이 심각하여 자녀들에 대한 학대까지 우려되는 부모 있는 가정보다는 차라리 편모, 편부 가정이 더 건강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지 오래인 형식적인 혈연 공동체보다는 장애인 공동체처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부대끼며 꾸려가는 살가운 공동체가 더 가족답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이 스쳐간다.
 
건강한 가정을 마련하기 위한 국가의 책임 및 지원을 골자로 하는 소위 '건강가정기본법'이 2005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혼 급증과 결혼, 출산 감소 등에서 비롯한 가족의 위기를 바로 잡아보겠다는 훌륭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도대체 건강 가정, 비건강 가정이 뭘까 하는 의문이 일면서 제목부터 껄끄럽다 싶더니, 역시 내용을 봐도 걱정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위 법에서 가족의 개념을 설명한 것을 보면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 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정에 대해서도 '가족구성원이 생계 또는 주거를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구성원의 일상적인 부양, 양육, 교육 등이 이루어지는 생활단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처와 자식들을 모두 외국에 유학 보내고 혼자 외로이 이 나라에서 돈을 벌고 있는 소위 기러기 아빠의 가정들은 위 법에 의하면 가정이 아니라는 것인가? 동성애 가족이나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한 가족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동거 가족들에 대해서도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니 지원대상이나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인가? 이 법대로라면 오히려 이 법에서 제외되는 다양한 현실 가족들에 대한 불평등이 가중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게다가 혼인과 출산과 관련하여서는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법의 기본인 헌법에서조차 개인에게 혼인과 가족생활을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법은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영역을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필자도 사회 또는 국가의 유지를 위해 결혼과 가족공동체 유지의 중요성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혼자 살기로 결정한 사람이나 자식을 낳지 않고 부부끼리만 같이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이 법의 지원 및 보호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국가적인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사람들로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다.
 
한편 이혼 전에 상담을 의무화하는 규정 또한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매우 높다는 통계가 매우 위협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실제 이혼을 상담해오는 경우의 대다수는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숱하게 참고 또 참아온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한테까지 다시 상담을 의무화한다는 것은 그 실효성에 대해 의심이 갈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또다른 부담과 고통을 지우는 것이다.
 
현재 위 법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법이라며 국가인원위원회에 제소된 상태이고, 시행 전에 대체입법을 새로 제정하여야 한다거나 제목부터 전면적인 개정이 있어야 한다는 여성계의 목소리가 드높다. 현실적인 가족복지정책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감하지만, 좋은 의도에 부합하는 좋은 법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손난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