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가능한 사람들에게 최선의 복지 서비스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보통수준의 생활이다. 문제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의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완전고용 수준이었던 고용상태가 비정규직 일자리 확대 추세에 발 맞추어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다. 평생 직장은 고사하고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는 고용 불안정층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 제공’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서비스 대신 일자리 제공은 우리보다 복지수준이 앞선 유럽의 경우도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피고용자들을 소수의 전문 엘리트층과 다수의 일반직으로 나누었으며, 전자에게는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후자에게는 고용불안정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한 근로빈곤층의 양산은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적정 수준의 경제발전을 유지하면서 국민들의 생활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유럽사회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사회보장social security을 동시에 충족)을 핵심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성 보장’과 이로 인한 근로 불안정층에 대한 사회보장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프랑스 등 유연안정성을 추구하는 국가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로 사회안정망(사회보장)의 통합성과 충분성 보장을 위한 제도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03년 정년연장 등을 골자로 한 퇴직제도 개혁, 2004년 건강보험제도 개혁 등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고용안정성과 관련해서 직업훈련, 취업알선 등 고용 유지를 위한 다양한 인프라 보완책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적 안정망이 없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조는 근로빈곤층의 양산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용 불안과 근로빈곤층의 확대는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청년층은 물론이고 준고령자, 고령자, 빈곤층 등 다양한 대상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시장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을 비롯하여 공공영역에서 직접 적절한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까지 ‘일자리관련정책’이 국가정책의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고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비롯한 공공의 역할은 물론이고 기업이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이 제공하는 사회적 일자리는 물론이고 기업이 중심이 된 민간영역에서의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도 유럽식의 ‘유연안정성’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이를 보완하는 사회보장의 강화가 동시에 추구되어야 시장에서의 고용의 문제와 근로 불안정층의 기본생활 보장이 가능할 것이다. ‘유연안정성’논의가 실질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노사정위원회 차원을 넘어서 국가와 기업, 노조는 물론이고 시민사회의 공동 참여 하에 ‘사회통합을 위한 대타협’을 이루어내야 한다. 대타협 과정에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공공의 일방적 통치를 넘어서 민간거버넌스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결정과정은 물론 정책의 전 과정에 실질적인 시민참여를 보장함으로서 사회정책의 지지기반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과제가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치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인재 (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