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일삼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여중생이 석방되었다.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하는 고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봐서 검찰은 불구속기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속적이고 극악한 가정폭력실상에 비추어 실제 여중생 또한 피해자로 볼 수 있고, 사건 당시에도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호하려고 하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려오다가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사례들의 경우, 아직도 대부분 구속 기소되고 장기의 실형선고를 받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번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고 또한 환영할만한 것으로 보인다. 여중생에 대한 구명운동을 펴고 있던 시민단체에서도 불구속기소결정을 환영하고 있지만, 이 사건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재판에서 무죄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편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에 부부강간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마련되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아내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행위 즉 범죄이므로 당연한 것이라는 찬성론도 있지만, 은밀한 부부간의 사생활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거나 부부간에는 동거의무가 있으므로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것 아니냐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강간죄 자체가 거의 반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물리적 폭력상황과 병행하는 것이고 사법기관의 법적용 실태에서도 피해자가 강력하게 반항하였는지 여부 등을 고려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동거의무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폭력적 상황을 방치 혹은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부강간은 말 그대로 흉악한 범죄를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지, 개인의 침실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폭력문제는 어제 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 가해자를 살해하거나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사망하는 등 끔찍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고, 관련기관의 통계에서조차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의 비율은 늘어나거나 더욱더 정도가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통계적 수치의 증가는 가정폭력에 대해 침묵하고 있던 피해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신고 등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가정폭력문제가 고질적이고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폭력은 '집안일'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이고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우울증 등 지속적인 정신질환을 호소하고 있으며 언제 남편에게 맞아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남편을 살해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기도 하고 실제로 맞아 죽기도 한다. 가정폭력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 또한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물리적 학대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폭력을 학습하거나 폭력상황에 익숙해져서 가정폭력의 가해자의 입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높은 이혼율을 걱정하면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 가정을 바로 세우자고 목소리 높이지만,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빈번한 폭력적 상황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제발 때리지 말자. 욕하지 말자. 가족이니까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니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제발 맞지 말자. 맞고도 참고 살지 말자. 가족이니까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니까 신고하고 처벌받게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제발 모른 척 하지 말자. 남의 집안일이라고 하지 말자. 우리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손난주(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