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지방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선거종반 박근혜대표에 대한 피습사건도 영향이 있었지만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을 내세운 한나라당에 몰표를 주었다. 결과에 대한 해석과 공과는 다양하다. 하지만 50%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질적으로도 압승한 것은 두 번에 걸친 대선의 실패와 3년간 절치부심한 지지자들의 공임에 분명하다.

지방선거의 결과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지만 지식인사회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상당수 교수들이 이런 저런 인연으로 유력한 차기 대통령후보에게 선을 대고 있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대선을 1년반 앞둔 지금 캠프가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노무현을 떠나는 사람들이 화제다. '교수신문'을 보면 지방선거 이전에 이미 친노에서 반노로 돌아선 교수들의 주장과 논리가 실려있다. “나는 왜 '반노'가 되었나”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짧은 인터뷰나 주장을 요약한터라 오해가 있을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오피니언 리더인 교수들의 반노논거는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떠나는 이유로 '이라크 파병, 한미FTA, 민주당과 분당, 영남패권주의, 대연정 제안, 정책우선순위 실종, 적을 만드는 배제정치, 재벌과 타협, 비정규직법안, 교육개혁, 세금폭탄, 환경문제, 국가보안법, 평택문제'등을 들었다. 반노의 이유로 들은 주제들은 하나같이 우리사회의 화두이자 치열한 대립전선을 형성한 내용들이다. 동시에 그 흔한 허니문은 커녕 노대통령이 당선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참여정부를 흔들어 댄 일부언론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동시에 대폿집과 식사자리의 안주거리다. 그 덕택일까. '아마추어, 무능, 불안'이라는 단어가 참여정부를 대변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왜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서 떠난 것일까. 더구나 참여정부 출범당시 누구보다 지지를 했던 교수들이 아니었던가. 노무현을 떠나며 던진 교수들의 주장은 철학은 있었지만 실력이 없다던 시각을 이젠 '철학도 실력도 없는' 정부로 바꿨다. 애써 노대통령만의 잘못은 아니며, 전략없는 참모진이 문제라는 옹호가 궁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친노에서 반노로 돌아섰다는 그들에게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그들 또한 열린우리당처럼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비판할 때마다 침묵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추어, 무능, 불안'을 말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상고출신, 지역주의, 운동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확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권위와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더 큰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참여정부에 대해 여론의 이름을 빌려 비판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그것도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다. 침묵이 동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이라면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침을 뱉기전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반노든 친노든 걱정해야 할 것은 권력의 집중과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우리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물론 유신의 시대와 같은 회귀가능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9·11과 이라크파병을 계기로 1950년대의 메카시즘이나 정부전복을 선동하는 행위를 금지시켰던 스미스법의 합헌성을 다툰 데니스판결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우연인가. 부시대통령이 불관용논리에 근거해 선제공격과 애국자법의 제정 그리고 통신검열의 합법화를 미국만의 특수상황으로 볼것인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보수화가 가져올 문제 또한 아마추어 정권의 문제만큼이나 심각할 것이다.

무릇 사회에 책임을 지는 지식인이라면 새둥지를 서둘러 찾기 전에 자신이 지지했던 정부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고, 자성을 하는 것이 먼저다.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대해 파산선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국민이 해야 할 일이지 침을 뱉고 떠난 교수들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민 배(인하대 법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