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이 뭔지 탈도 말도 많다. 신용카드로 신나게 명품 사재기를 하다보니 쪽박 찼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러는 그 신세를 면해보려고 절도행각을 벌이다 철창행이 됐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명품을 지녔다고 해서 납치대상이 되기도 했다. 명품 살 돈을 마련하려고 원조교제에 나서는 여중생들도 있다니 충격적이다. 자동차도 명품이니 명차니 해서 국산차는 울고 외제차는 웃는다. 경기가 워낙 나빠 밥장사도 술장사도 잘 안된다고 울상인데 명품장사만은 불황을 모른단다.

듣는 이에 따라 명품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듯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외국의 유명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붙인 외제상품을 ‘유명상표’라고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이런 외제상품을 ‘명품’이라고 부르는가 했더니 인제는 언론마저 아무런 거리낌없이 쓴다. 마치 외제유명상표는 걸작품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본산지에서도 ‘사치상표’(luxury brand) 또는 ‘디자이너 상표’(designer brand)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언론이 유명상표를 명품으로 대접해서 그런지 이제는 그것이 신분과시의 상징처럼 비치는 모양이다. 온 나라가 ‘명품열풍’에 홍역을 앓는다. 이른바 권위지라는 신문일수록 가끔가다 ‘명품’특집을 다룬다. 백화점에는 외제유명상표에 밀려 국산품이 사라진지 오래다. 서울 압구정동, 청담동에는 명품 전문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할리우드의 비버리 힐을 닮아 가는 듯하다.

거기에다 중고 명품점도 성업중이다. 전당포도 옷가지, 핸드백 따위의 명품을 주로 취급한다니 세태변화를 실감케 한다. TV드라마에서는 출연인물들이 유명상표로 떡칠한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요즈음은 애견용품에도 명품바람이 분단다. 목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코트, 담요, 비옷에 향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해외여행에도 유행이 있나보다. 한때는 동남아나 중국 등지에서 보신관광이니 매춘관광이니 해서 말썽을 빚더니 요즈음은 명품관광이 붐이라고 한다. 홍콩이나 파리, 로마에서는 한국인들이 떼지어 유명상품을 사재기하느라고 난리란다.

할인판매 기간 중에는 유명상표 사재기에 나선 한국인들로 매장마다 북새통을 이룬단다. 값, 모양, 크기, 색깔을 가리지 않고 싹쓸이하느라 야단이라고 한다. 루이비통 같은 상품은 한 사람에게 한 개씩만 팔기 때문에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에게 수고비를 주고 사달라고 부탁하는 진풍경도 연출한단다.

관세청에 적발된 여행자 휴대품을 보면 명품여행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짐작된다. 작년 한해 동안 세금을 안내고 휴대품으로 반입하려다 적발된 고가사치품이 무려 60만4천565건이나 된다. 전년보다도 23.2%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란다. 카메라 11만1천420건, 보석 및 귀금속 2만2천475건, 핸드백 5만7천475건, 고급주류 22만5천655건 등이다.

적발품목은 주로 명품이라는 유명상표이며 이 중에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상품이 수두룩하단다. 아마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 같다. 입국장에서는 명품을 이삿짐 보따리처럼 사들고 오는 광경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산품 애용하여 나라 사랑하자던 시절은 마감하고 개방시대의 막이 열렸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한 준비작업이 추진됐다. 그 중의 하나가 외제상표를 도입해서 국산품의 품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통에 국산품에 외국상표를 붙이는 조건으로 로열티를 주는 기술도입이 봇물을 이루었다. 유명상표는 이렇게 수입장벽을 뚫고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소득증대에 힘입어 대중화됐다. 그러더니 이제는 온 나라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상품만 찾는 명품열풍에 휩싸여 있다.

불과 6년 전에 IMF 사태가 터져 나라경제가 거덜났었다. 최근 몇 년째 흑자를 나타냈던 경상수지가 올해는 상황전개에 따라 엄청난 적자로 돌아설 처지다. 위기적 상황이 예상되는 데도 너나 없이 벼락부자나 된 듯한 허위의식에 사로 잡혀 흥청망청 낭비생활이 지나치다. 나라가 왜 이렇게 경박하고 천박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일본도 명품열풍이 심한 모양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4배나 많은 나라이다./김영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