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있다. 45세가 정년인데 56세가 넘도록 직장에 다니면 봉급도둑이라는 말이란다. 지금 이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대교체를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듯싶다. IMF 사태 이후 해고의 바람이 자질 않는다. 처음에는 50세 이상이 과녁이더니 이제는 45세로 낮아졌다. 경험도 쌓고 기술도 익혀 일할 나이가 됐나 싶으면 직장에서 쫓아낸다.

고과점수를 인력감축의 기준으로 삼으니 반발이 많았다. 결국 연령순이 되고 말았다. 기업에 따라서는 신년 벽두에 50세가 되는 모든 직원에게 해고를 통지한다. 단두대에 올라가는 느낌이지만 그것이 대세라고 체념하고 만다. 그러더니 요즈음은 그 나이가 45세로 뚝 떨어졌단다.

이 나라에서는 나이보다 더 큰 죄는 없다. 능력과 경륜 따위는 묻지 않는다. 성장시대의 주역이 하루아침에 무능과 부패의 낙인이 찍혀 사회에서 추방되고 만다. 50대는 말할 것도 없고 40대도 그 대상이다. 패각추방(貝殼追放)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가 하면 젊음은 창의와 활력으로 칭송 받는다. 세대를 단층화(斷層化)하는 분화작업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세대간의 간극(間隙)이 점점 더 벌어진다.

이 거대한 사회변화의 구심점에는 인터넷이 자리잡고 있다. 타자기가 대중화하지 않은 이 나라에 갑자기 컴퓨터 시대가 열렸다. 타자에 능숙하지 않은 세대가 컴퓨터를 멀리하는 사이에 인터넷이 젊은 세대를 하나로 엮었다. 문자통화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의식을 공유하면서 동질화 현상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세대를 밀어낸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의 탄생은 2030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20, 30대가 인터넷을 통해 그를 연호하여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이 든 세대는 그의 투박한 말씨에 불안한 눈길을 보면서도 변화를 일구어 내기를 기대했다.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 찬 사회를 바로 잡기를 말이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변화를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있다. 그것은 지배층의 연령대가 훨씬 젊어졌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각료 연령은 평균 55세로 김대중 정부의 59세보다 4세나 젊어졌다. 행정자치부, 법무부 같은 중책은 40대가 맡았다. 무엇보다도 청와대 비서진의 연령이 10년 가량 연소해졌다. 30, 40대가 80% 가량으로 이른바 386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단다. 노무현 정부가 처음 도입한 장관정책보좌관도 절반 가량을 386세대가 차지했다. 행정경험도 행정지식도 없는 그들이 무엇을 보좌하는지 몰라도 말이다.

한국은 연고사회다. 학연-지연-혈연을 근거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갈라 먹는다. 그래서 재계도 정계-관계의 인맥에 맞춰 개편한다. 5대 재벌 임원의 평균연령이 5년 전에만 해도 50세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45세로 낮아졌다. 삼성그룹의 임원은 지난해만 해도 40대가 59%를 차지했는데 올해는 67%로 늘어났다. 50대 부장이 40대 임원 밑에서 일하기는 어렵다. 이런 변화는 전조직의 연소화를 촉진한다.

개혁신당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이 나라 정치는 썩을 대로 썩었다. 정치개혁을 이룩하여 도둑이나 진배없는 정상배를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386을 통해 세대교체를 단행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 몰라도 음모론이니 뭐니 하는 마찰음이 들린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연령구조는 고령화하는데 고용구조는 연소화하고 있다. 이런 사회구조의 모순을 극대화해서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소년출세는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일 수가 있다. 40대 중역을 좋아만 할 일은 아니다. 임기를 마치니 할 일이 없어 소주타령으로 세월을 보낸단다. 그러니 대학 캠퍼스에는 사시바람, 의대바람이 날로 드세진다. 자격증만이 미래를 보장한다며 말이다. 인문계는 너나없이 사법시험에 매달린다. 이공계는 저마다 의대대학원에 가겠단다. 조기퇴직이 연출한 사회현상이다. 학문이 없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20세기 후반 50개가 넘는 민족을 하나로 묶어 중국통일을 이룩한 제도는 장노정치(gerontocracy)다. ‘잃어버린 세대’인 40, 50대여, 일어나라. 다음 총선에서 세대분리를 획책하는 세력을 표로 응징하자.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다./김영호(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