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의 자격요건으로 연령에 대해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누구든지 당내의 자유경선-예비선거로 공천을 받아 국정운영에 관한 비전과 정책을 갖고 출마해 당선되면 그만이다.
민주주의사상 가장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은 영국의 프란시스 놀리스 경(卿). 1575년부터 1648년까지 73년간 재임하다가 의사당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신기록도 세웠다. 20세기 들어 최장수 재임의원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로 1900년에 처녀당선된후 당적을 바꿨다가 한번 낙선된 것을 제외하고는 무려 63년동안 재임하면서 2차대전중에는 루스벨트와 함께 연합국을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미국의 경우 얼마전 100세로 사망한 스트롬 더몬드 전 상원의원처럼 35~40년간 상·하원의원을 지낸 인사들이 많다. 선거때마다 20~30명의 상·하원들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푹 쉬면서 회고록을 쓰려고” 등의 이유로 출마를 포기하거나 은퇴하기 때문에 세대교체에 대한 논란이 없다.
일본도 선거때면 20~30여명의 원로들이 은퇴하고 대신 아들, 사위, 비서관 등을 후계자로 출마시킨다. 올가을 총선을 앞두고 평소 대한(對韓) 망언을 일삼던 90세인 오쿠노 세이스케 등 70~80대 의원 10여명이 벌써부터 불출마를 예고했다.
역대 일본국회의원 최장수 재임자는 19세기말부터 60년간 25차례나 당선된 오자키 유키오로 일본국민들은 그를 '헌정의 신(神)'으로 추앙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은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위해 '70세이상 후보 불공천'을 당헌에 규정하려했지만 고참들의 반발로 실패하고 다만 비례대표후보만 73세로 제한했다. 그러나 1947년 이래 56년째 계속 당선된 85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50년째 재임해온 83세의 미야자와 기이치 두 전 총리가 재출마 의욕을 보이고 있어 고민에 빠져있다.
우리나라에서 세대교체론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60년 4·19혁명 직후였다. 교육, 문화, 예술, 종교 등 각 분야마다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었으나 정계는 자유당의 몰락으로 대신했다. 그 후 1961년 5·16쿠데타, 1972년 10월 유신, 1980년 12·12와 5·18쿠데타 등 3차례에 걸쳐 정치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정계개편, 세대교체가 단행됐다. 연령이 아니라 군부가 보는 부정부패가 기준이 됐다.
한나라당이 '세대교체론-장로들 용퇴론'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 초선의원들이 내년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60대 이상의 자진사퇴론을 제기한 것을 시발로 상당수 초선의원들은 한나라당은 노인당, 수구당이란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해야하며 특히 구 민정당과 영남당의 이미지 쇄신을 하지 않으면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진들은 “연령에 의한 경험·경륜을 외면하자는 것이냐”면서 “민주당의 신당파와 모종의 연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필자는 물론 연령을 기준으로 한 세대교체에 반대한다. 당운영도 그렇고 효율적인 의정활동, 국정운영, 정부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 경륜, 지식과 패기, 추진력이 어우러지는 게 이상적이다. 소위 노·장·청(老·壯·靑)의 화합체제는 시대와 여당의 구분없이 언제나 필요하다. 마구잡이식 물갈이는 오히려 단합을 저해하는 요인일뿐더러 후유증과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한나라당도 변해야 하며, 변하지 않을 경우 언제까지나 국민의 박수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사는 물론 20여년 동안 지역성과 각종 기득권으로 안주해온 노장들 중 일부라도 후진을 위해 아름다운 퇴진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말이 상향식 공천이지 기득권자에게만 유리한 공천 방식일 경우 신인의 진출, 당 쇄신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뜻있는 원로들은 국가와 당, 민주적인 국민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이성춘(언론인·前 고려대 석좌교수)
한나라당과 高麗葬論
입력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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