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의 수학성적은 고 2, 3학년 전부 ‘가’다. ‘미’도 없고 순 ‘양’하고 ‘가’뿐이다”.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의 교사 의견도 모두 ‘교우관계가 불순하다’, ‘게으르다’였다.”
 
지난 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그를 ‘양가 아저씨’라고 조롱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인격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감사원장 후보는 공인이지만 이것은 수인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학생생활기록부가 멋대로 공개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물론이고 선거기간 중에도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곧잘 등장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비타협적이니 독선적이니’ 하는 따위의 개인정보가 악의적으로 유포됐다. 신랑감, 신부감의 성품을 알아보려고 열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인격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보니 TV프로에서도 교사들이 거리낌없이 제자들의 과거를 들춘다.
 
프라이버시권은 사생활을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보장 내지는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정보화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권의 침해가 늘어남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혼자 있을 권리’라는 소극적 개념을 넘어서 사생활에 관한 정보나 자료를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적극적 권리로 자리잡는 추세다. 다시 말해 ‘자기와 관련한 정보의 전파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자기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개인정보가 침해되고 있다. 인터넷 해킹에 의해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은행, 신용카드, 병원, 백화점 따위의 상업적 자료는 물론이고 건강보험, 차적등록 등 정부소관의 자료도 유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날로 첨단화하는 도청·감청 장비와 오디오, 비디오를 통해서도 사생활이 감시당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공적·상업적 목적으로 컴퓨터에 집적한 개인정보가 범죄 등 다른 목적으로 악용되는데 있다.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다.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재산현황도 쉽게 안다. 자가인지 전세인지 콘도나 골프 회원권을 가졌는지도 알 수 있다. 예금잔고, 소득수준, 신용상태, 소유차종도 파악된다. 무슨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얼마나 잘 했는지도 드러난다. 어떤 병을 앓았는지도 알 수 있다. 매일 배달되는 ‘쓰레기 우편물’은 거의 이런 자료에 근거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이제 개인정보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을 이용한 국제조직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에 본부를 둔 ‘초이스포인트’라는 정보수집회사는 라틴 아메리카 10개국의 일반인 수천만명의 개인정보를 집적하고 있다. 이 회사가 이 자료를 미국 정부기관에 판매해 온 사실이 지난 4월 AP통신에 의해 폭로됐다. 이에 대해 ‘초이스포인트’는 공공기록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니카라과 정부는 ‘초이스포인트’가 은행계좌, 부채잔고, 주택등기 등 사개인의 기밀도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콜럼비아에서는 전국 유권자 3천만명이 등재된 선거인 명부를 통째로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선거인 명부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자료, 차적등록부에서 6천만명에 관한 각종 정보를 채취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까닭인지 미국 비자를 신청한 중·남미인들은 미국 영사가 그의 인적 배경을 훤히 알고 있는데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1천만명에 가까운 재학생과 졸업생의 수백 가지 개인정보를 수록한 생활기록부가 시도교육청의 서버에도 보관되고 있다. 아직 논란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결코 학교 담장을 넘어서는 안될 개인정보이다. 그것이 중앙집중체제에 집적되어 해킹 당하는 순간 모든 국민의 개인정보가 누출된다. 교육당국이 그것을 추진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개인정보가 국경마저 넘고있다. 초국적기업이나 타국 정부마저 그것을 언제든지 악용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말한 ‘빅 브러더’가 발가벗은 당신을 지켜보는 세상이 됐다./김영호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