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의 한국전쟁으로 국가와 국민, 그리고 기업 등 모두가 가난했던 1950년대 정치자금은 집권여당인 자유당의 독점물이었다. 자유당의 수뇌부가 돈을 걷을 업체들의 명단을 추려 해당기업에 연락하면 모든 기업들이 자금난, 경영난 속에서도 군말없이 응했다. 그런데 한 기업인만이 거부했다. Y양행의 유일한 박사였다. 9세때인 1904년 미국에 건너가 초·중·고·대학을 마치고 31세(1926)때 귀국해 Y양행을 세워 해방이후까지 경영해온 애국자이자 민족기업인이었다. 그는 건전한 정치자금이 미국 민주주의의 토양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압적인 방식도 그렇지만 반민주적인 자유당에 대한 지원은 독재정권의 강화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푼도 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화가 난 자유당은 경찰을 동원, 경리과장 등을 구금하며 압력을 가하자 마침 일본에 체류중인 유 박사는 “차라리 회사문을 닫아라”고 지시했다.

미국은 선거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자금의 모금과 사용은 엄격하게 규제한다. 후보자가 모금사용하는 소위 'hand money'는 수지(收支)상황을 이잡듯 규제·감시한다. 다만 정당 주도로 모금·사용하는 'soft money'에 대한 규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의 선거법은 후보 1인당 1천만원정도의 법정비용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돈을 적게 쓰게하는 정치로 유명하다. 하지만 선거기간중 거액을 모금하여 선전비 등으로 마구 사용하는 중앙당차원의 자금운용에 대해서는 시비와 함께 갖가지 스캔들로 꼬리를 물어왔었는데 2000년 정당·선거 및 국민투표법을 제정, 개인의 헌금규제와 함께 법인이 정당에 헌금을 할 때에는 반드시 주주총회의 의결을 받도록 견제장치를 했다.

우리나라의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은 겉으로 볼때는 당당한 선진국형(型)이지만 핵심장치가 빠져 선거때 쓴 각종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기가 불가능하다. 즉 각당은 모금·사용한 총액만 신고하고 선관위는 이를 토대로 형식적인 실사(實査)를 하니 검은 자금을 찾아낼 리가 만무하다. 작년 12월 대선때 후보 1인당 법정선거비용은 342억원으로 한나라당은 226억, 민주당은 267억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고 실사를 했지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정했었다.

바로 한나라당이 SK로부터 100억원의 자금을 받고도 영수증처리 하지않고 불법사용함으로써 신고액이 불신덩어리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런 것이 한나라당뿐이겠는가. 대선때마다 각당 후보들이 해온 행태일 것으로 추측된다. 한나라당은 일단 국민에게 사죄하면서도 '우리만 들추기냐, 야당탄압이다'라는 의구심속에 여야대선자금에 대한 무제한적인 특검과, 노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의혹에 대한 특검법안을 제출할 뜻을 밝혀 눈길을 모았다.

여기서 필자는 대선자금의 해법으로 각당이 고해성사를 한후에 사면하게 하는 방안은 지금까지의 불법 적당히 덮기 관행을 되풀이 하는 것이어서 반대한다. 다음 검찰수사를 중단하고 특검을 가동시키는 것 역시 문제가 많다. 특히나 어느 정당·정파도 이 문제를 정국주도와 내년 총선전략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검찰수사를 지켜본 후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을 경우 특검을 실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울러 검찰이건 특검수사이건 관련자는 이런 비리가 재연되지 않게 엄벌하는 게 타당하다. 아울러 불법자금을 요청·제공·수령자 모두 엄벌하는 한편 선거때 정치자금의 제공자는 개인·법인 모두 액수와 함께 선관위에 신고하고 공개하도록 관계법을 서둘러 고쳐야 한다. 야당도 개인과 회사이름을 공개할 경우 자금줄이 끊긴다는 우려를 깨끗한 선거와 정치발전을 위해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유박사같은 기업인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