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졌단 말인가. 대통령인 나에게 감히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하고 명령할 수는 없어. 법무장관은 당장 건방진 특검의 목을 자르라고….”
 
1973년 가을, 닉슨 대통령이 분통을 터뜨렸다. 1년전 민주당 본부에 도청장치를 하려다 적발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후 온 미국 국민의 관심은 대통령의 관련여부에 쏠렸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닉슨이 취임이래 백악관의 모든 회의를 극비리에 녹음했음을 알았고 녹음테이프의 제출을 명령하자 리차드 클라인딘스트 법무장관에게 즉각 파면하라고 노발대발한 것이다. 이에 법무장관은 물론 차관도 거부하자 닉슨은 장·차관을 함께 해임했는데 언론은 '토요일의 대학살'이라며 비난했다.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은 의회의 청문회를 통한 여론의 압박과 함께 콕스 특검이 대통령이 사건은폐에 관여한 것을 밝혀냄으로써 닉슨을 사임케 했다.
 
특검은 권력과 관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빚어질 여지가 있을 때 독립된 검사를 임명해 수사토록 하는 제도로 미국에서 시작됐다. 첫 특검은 1870년대 니 그란트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의 탈세 사건에 대해 최초로 운영됐다. 100년 이상 시행되어온 특검제는 워터게이트 사건 규명으로 국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고 의회는 1978년 특별검사법을 제정했다가 2000년에 폐기했다.
 
우리나라가 특검제를 도입한 것은 1999년으로 지금까지 옷로비, 파업유도, 이용호 게이트, 대북송금 등 4차례 시행됐고 이중 이용호 게이트와 대북송금의 경우는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받을만하다. 특검법 문제가 연말 정국의 큰 변수로 등장했다. 대통령의 재의(再議)요구시한이 26일로 임박하자 한나당의 최병렬 대표는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대통령에 대한 전면투쟁”을 선언했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정략적 차원을 넘는 집단적인 생떼쓰기”라고 일축하고 오늘 국무회의에서 논의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여기서 필자는 노 대통령은 특검법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반드시 수용해야할 이유로서 첫째는 이 특검이 다른 문제가 아닌 바로 최도술씨 등 대통령의 핵심측근 3인의 비리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옳다.
 
또, 현재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중인 만큼 결과가 나올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특검을 통해 측근들의 비리여부를 규명케하는 것이 보다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일 것이다. 둘째는 특검법안이 국회에서 겨우 통과한게 아니고 재적의원 3분의2인 182표보다 2표가 넘는 압도적인 표 수로 가결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대의기관 아닌가. 표 수는 곧 국민의 뜻이므로 노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 셋째는 동법안을 반려, 국회에서 재의에 붙여질 경우, 혹시나 상황변화와 함께 3야당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 폐지될 수도 있다는 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당당한 자세라고 볼 수 없다. 국민들은 노 대통령이 측근들의 비리의혹에대해 자진해서 국민적인 검증을 받고 앞으로 남은 4년3개월의 임기동안 자신있게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모습을 고대하고 있다.
 
물론 최 대표가 전면전을 예고하고 한나라당측에서 탄핵 또는 국회 보이콧과 농성, 가두시위 등을 비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특검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예산안, 경제회생, 민생대책 등을 외면하고 무조건 강경투쟁에 나선다면 그것은 책임있는 제1야당, 국리민복의 구현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정당, 정책 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노 대통령은 설사 법무부와 검찰이 특검거부를 건의해도 깨끗한 정부, 깨끗한 청와대를 구현한다는 대국적 견지에서 특검법을 수용, 공포해야 한다.
 
국민은 말은 없지만 대통령의 결단을 지켜볼 것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