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부터 정부수립때까지 미군정 3년동안 한민당과 이승만 박사는 끈끈한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보수세력의 집결체인 한민당은 이박사의 반공 및 남한만의 단선단정(單選單政)노선을 줄곧 지지했고 5·10총선거에서 다수의석을 얻어 여당으로 자임했으며 제헌 국회에서 초대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한민당은 당수인 인촌 김성수씨가 당연히 국무총리로 지명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박사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미국정부의 수석장관인 국무장관을 예로들었다.
 
즉 대통령제하에서 총리란 '수석참모', '수석보좌관'에 불과하다며 인촌에게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재무장관이 더 중요하니 맡아줄 것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박사로서는 집권하기까지 한민당의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인촌을 총리에 앉힐경우 '한민당정부'가되어 국정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고 총리격하론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뒤 초대 총리에 이범석장군을 시작으로 56년간 지금의 고건총리에 이르기까지 35대의 총리가 재임해오고 있다.
 
우리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국무위원의 임면 제청권을 갖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소관업무를 관장하는 독임제 행정기관의 지위를 갖는다. 특히 대통령이 유고될 때에는 권한을 대행한다.
 
이처럼 막중한 권한과 임무를 수행하는 총리직이지만 국민들에게는 탐탁지않은 인식을 주어왔다. 대부분의 총리들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소위 대독(代讀), 의전(儀典), 보신(保身), 간판총리라는 인식을 주어왔던 게 사실이다.
 
얼마전 여권수뇌부들이 회동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동석해 새총리카드로 연초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혁규 전경남지사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김씨를 성공한 최고경영자(CEO)형 정치인으로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대해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씨를 배신자라고 지목한 한나라당은 총리지명설에 “그렇게 할 경우 과연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하튼 여권의 후임총리얘기는 3가지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대통령의 탄핵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직 나오기 전에 제기된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만일 현재 직무정지상태인 노 대통령이 김혁규총리론을 강조했다면 잘못된 일이다.
 
다음 노 대통령은 총선전 몇차례나 책임총리제를 강조하면서 원내과반수를 차지한 제1당에게 총리추천권을 주겠다고 한 바 있는만큼 공언한 대로라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한다. 셋째, 총리지명은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장차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구현하려한다면 헌재의 탄핵기각결정후 야당에 총리내정을 사전에 통보하고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이 김 전지사의 총리지명설에 발끈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혹시나 부산시장과 경남지사등 6·5지방보궐선거에 미칠 역풍에 대한 경계도 고려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친 감정적 반응·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새총리후보가 지명되면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총리로서의 능력, 경륜, 자질, 도덕성 등을 심도있고 폭넓게 검증함으로써 국민의 공감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헌재의 탄핵여부결정이 금주중에 매듭될 것으로 알려졌다. 기각될 경우 새총리인준은 17대 국회벽두의 최대이슈가 될 게 분명하다.
 
과연 노 대통령이 약속대로 책임총리를 구현할 것인지 아니면 또 한사람의 대독, 의전, 보신총리를 지명할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