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가장 긴 나라는 미국이다. 장관에 임명되면 소관분야와 관련해 큰 사고의 발생 또는 실수, 시행착오가 있었거나 건강상 이유 등으로 자진사퇴를 하기 전에는 대통령의 임기(4년)와 비슷하게 재임한다.
 
이처럼 관례적으로 장관을 오랫동안 재임케 하는 것은 일관성있는 정책집행과 책임행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장관의 수명이 길기 때문에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은 장관제의가 오면 행정과 국정운영의 경험을 얻기위해 기꺼이 호응한다.
 
그뿐인가. 정부의 차관보급 이상의 고위직 임명에 앞서 청문회를 통한 인준권을 갖고 있는 상원은 장관의 자격심사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고 까다롭게 진행한다.
 
평생 국방장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공언해오던 상원의 존 스타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후 장관후보가 됐으나 동료의원들에 의해 부결됐다.
 
현 부시 정부의 존 애슈크로포트 법무장관은 상원의원시절 인권관련 발언으로 부결될 뻔 했다가 간신히 인준됐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외교·국방 등 중요한 문제 이외에는 각부 장관에게 거의 전권위임하고 수시로 부인과 농장에서 휴가를 즐겼다.
 
그는 각의에서 종종 A장관을 B장관으로, B장관을 C장관으로 이름을 잘못 불렀는데 다른나라 같았으면 언론의 공박을 받았겠으나 미국의 언론은 레이건의 인사관리 스타일을 이해하고 눈감았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중에서 장관의 권위가 가장 대단했던 때는 이승만 정부시절이었다. 명령 하나로 행정을 좌지우지 했으며 지방시찰에 나서면 마치 나랏님의 행차로 여기고 기관장과 관리, 주민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영(令)이 섰었다.
 
장관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서 걸핏하면 개각을 하면서 부터였다. 이후 장관의 평균수명을 보면 전두환 정부 14개월, 노태우 정부 12개월, 김영삼 정부 11개월, 그리고 김대중 정부 10개월로 점점 낮아졌다.
 
DJ는 5년 재임중 각 부처마다 4~6명의 장관을 교체했는데 백년대계라는 교육부장관의 경우 무려 7명을 임명·교체하는 실태를 드러내기도 했다. 장관이 1년도 안돼서 자주 바뀌다보니 일관성있는 정책추진과 효율적인 국정운영은 실종된 지 오래이고 생기는 것은 기강해이와 함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뿐이었다.
 
17대 총선이 끝난지 한달 반, 헌재에서 탄핵안이 기각된지 보름이 지나는 동안 개각설이 지루하게 계속되어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더욱 어지럽게 하는 것은 계속되는 개각설을 청와대가 방치하다시피하고 있는 점. 열린우리당 수뇌들의 통일부장관 경쟁설, 물러나는 고건 총리에게 새각료 제청을 의뢰했다는 소식 등이다.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해결해야 할 중요 현안들이 산적한데 지루한 개각설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여당의 중진 수뇌들의 입각은 이해하나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통일부 장관 경쟁설은 막아야 한다.
 
대북문제의 민감성을 감안, 통일부는 어디까지나 전문가가 맡아야 하며 혹시나 대권지망생들의 국정의 연습장으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새 장관의 임명은 새총리가 제청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편법으로 물러나는 총리에게 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헌재의 헌법준수 강조를 잊어서는 안된다.
 
노 대통령은 더이상의 개각설로 국민의 혼선과 공직사회의 술렁임을 막아야 한다.
 
17대 국회개원 즉시 새총리 인준안 요청 등 개각일정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명심할 것은 2년이상 재임을 보장하겠다던 취임초의 약속과 함께 국민도 공감할 수 있는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교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