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을 등록·공개토록 하는 제도는 한마디로 깨끗한 공직사회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재산의 등록·공개 제도를 철저히 시행중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공개차원을 넘어 대통령, 부통령, 장관, 상하의원과 주지사 등은 공직취임과 함께 모든 재산을 제3의 대리인에게 백지신탁(白祇信託·Blind Trust)케 하고 공직을 그만둘 때까지 어디에 얼마를 투자했는가를 일절 확인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공직자의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한 나라들 중 가장 성공적인 나라는 싱가포르고 대표적인 실패국가는 필리핀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이광요(현 선임장관) 전총리는 30여년간 1인지배, 독재를 하면서 누구든 공무원에 임용되면 재산을 신고케 하고 부패방지국에서 부당한 재산증식, 뇌물수수 등을 철저히 감시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손꼽히는 깨끗한 공직풍토를 이룩했다. 반면 공무원들의 부패로 악명이 높은 필리핀은 오래전부터 전공무원에게 재산 등록 공개제를 실시해왔으나 허위신고 투성이인데다 이를 감사할 기구가 허술하여 재산공개는 유명무실화 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의 경우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된 것은 1981년 12월 31일. 정통성이 결여된 전두환 정권이 공직비리를 근절하겠다는 거창한 취지아래 만든 것이다. 차관급 이상 공직자들에게 재산을 등록케 했으나 공개를 하지 않아 입법취지를 무색케했다. 이것이 김영삼 전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1993년 3월초 법규에도 없는 자신의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모든 공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유도하게 되고 윤리법도 대폭 손질했다. 특히 행정, 입법, 사법부는 윤리위를 두어 등록재산을 심사한 결과 허위기재, 중대과실로 누락 혹은 오기했을 경우 경고 및 시정조치, 과태료 부과, 일간신문에 허위사실 공표, 해임·파면의 징계를 소속장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엄벌규정을 두었다. 이후 해마다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해오고 있으나 국민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가고있다. 최근 공개한 행정부의 1급이상 공직자 594명의 재산변동신고내역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1년새 75.3%가 재산을 늘렸고, 1억원이상 증식한 사람만도 87명이나 됐다. 문제는 재산을 늘린 대부분의 방법이 부동산테크, 땅테크라는데 국민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재산증식의 최고스타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로 최근 4년간 재산을 3.5배나 늘려 91억원이 됐고 지난 1년간만도 5억여원이나 증식한 것. 여기에다 부인이 경기 광주지역의 논밭 5천800여평 매입해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국민들을 아연케했다. 물론 공무원이라고 재산증식을 하지 말라는 법도, 재테크·땅테크하지 말라는 법규정도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증식이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해도 도의적·윤리적으로도 과연 문제가 없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기야 지난 13년동안 재산은닉과 허위신고 등으로 신문에 공표되고 해임·파면됐다는 공직자는 거의 없다. 윤리위가 과연 제대로 심사·감사를 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이런 식의 형식적·의례적인 재산등록과 공개는 본래 깨끗한 공직사회조성이란 취지와는 먼 것으로 매년 고위 공직자들의 재테크, 땅테크 스타를 선발·공표하는 행사에 불과하다.
 
여야는 대선·총선때 그토록 다짐했던 고위공직자들 재산의 백지신탁제도는 겨우 주식만을 신탁하는 선으로 변형돼 입법예고까지 됐음에도 입법추진의사는 나타내고 있지도 않고 있다. 과연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
 
노 대통령은 기왕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상 형식적인 재산등록·공개제도를 필리핀식으로 방치할 것인지, 미국·싱가포르식으로 엄정감사 등과 함께 백지신탁제를 본격 실시할 것인지 택일해야 할 것이다. /이성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