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1928년 '선거때 모든 가정마다 냄비에는 프라이드치킨을, 차고에는 자동차 한대씩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당선됐다.
그러나 취임 1년만에 과열경기로 주가(株價)의 폭락-세계적 금융공황으로 미국경제가 붕괴되자 분노한 국민들로부터 거짓공약으로 표를 도둑질했다는 원성을 들었다.

부통령으로 있다가 쉽게 후보로 지명된 조지 부시는 '레이거노믹스의 효과'를 굳게 믿고 재임중 단 1달러의 세금도 인상치 않겠다고 약속해 당선된후 눈 덩어리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각종 세금을 올렸다가 아들뻘인 클린턴에게 낙선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클린턴은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싼값으로 의료서비스를 받게 한다고 약속 후 부인인 힐러리를 위원장으로 6개월만에 국민의보개혁안을 만들었으나 의료계, 학계, 복지 전문가 및 야당들로부터 수준 미달의 유치한 안이라는 반발로 백지화됐다.

1950~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도 선거 때면 전국 각지에서 교량 신설, 공회당 신축, 국립병원 건립, 도로 포장 등 요란한 공약들이 쏟아져 나온 후에는 경쟁적으로 기공식, 착공식이 거행됐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는 거의가 공사가 중단되어 교각 철근벽, 시멘트 기둥과 웅덩이들이 유령처럼 부락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결국 지키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표장사만 되고 당선만 된다면 공약을 포장해 펑펑 쏟아냈고 속는데 이골이 난 국민들도 공약은 거의 공약(空約)으로 여기고 흥분도 감동도 잊어버린지 오래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당의장은 근 20여일간 16개 시·도를 순회하며 이른바 정책데이트를 벌였다. 이번 데이트가 오는 5·31지방선거의 득표-승리 전략용임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동안 각 광역시에서 밝힌 공약들이 100건 이상의 거대한 사업들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것들을 보면 포항~삼척간 동해중부선 건설(2조4천억원), 송도신항조기개발(1조2천억원), 충주~청주고속도로(1조원), 익산~순천복선화(800여억원), 제주LNG발전소(3천억원), 대덕특구진입도로(2천950억원) 등이다.

강원도의 경우는 대관령 4계절 생태휴양·관광단지건설추진안이다. 이는 그동안 강원도와 관광공사가 검토해 온 것으로 예산만도 도로·철도건설(3조8천억원), 리조트개발(7조원) 등 무려 10조원이나 소요되는 거대한 사업이다. 열린우리당이 지금까지 발표한 공약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17조6천700억원이나 된다.

사실 공약이 무게를 갖고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면 다각적인 타당성, 합리성, 국가및 지역발전의 적합성, 사업의 우선 순위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면밀히 검토돼야 하며 공약으로서 제1의 조건은 뭐니뭐니해도 재원의 확보문제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공약발표-정책 데이트를 통해 납득할 만한 재원마련책을 별로 들을 수 없고 상당수의 사업안들은 그동안 정부부처, 지자체 등에서 검토중이거나 보류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작년 재보선서의 2차례의 전패·완패를 만회하고 지지율을 끌어 올리고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장차 탄탄대로의 대선가도(街道)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말겠다는 결의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약을 남발한다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표를 대거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요 오산이다. 공약의 다발(多發)·남발(濫發)은 국민에게 혼란감을 주고 실망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단 1억~10억원짜리의 사업도 타당성 검증서부터 재원마련책까지 합리적인 프로그램을 작성해서 국민에게 다가갈때 국민들은 감동하고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공약이 공약(空約)으로 폐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게 과학적 합리적인 공약개발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성 춘(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