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이탈리아에서는 젊은 검사들을 주축으로 '반부패추방운동'이 일어 국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이른바 '마니 폴리테', 즉 '깨끗한 손'으로 불리는 이 운동으로 당시 수상을 비롯해 150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관계 고위급 인사 3천명이 수사대상에 올랐고 이 가운데 1천400명을 체포, 1천명이 유죄판결을 받는등 이탈리아 개혁의 신호탄이 됐다.
'마니 폴리테'를 주도한 사람은 밀라노 지방검찰청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였다.
피에트로 검사를 주축으로 한 '마니 폴리테'는 사설 요양원권의 계약을 따게 해주는 대가로 6천500달러를 받아 챙긴 부동산 개발업자를 체포하면서 시작됐다.
무려 1년6개월동안 '마니 폴리테'를 주도하던 피에트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에 시달렸고 동료 검사 1명이 피살되기도 했지만 이 운동은 결국 성공을 거뒀다.
마니 폴리테가 성공할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국민들의 지지였다.
수사과정에서 정치권력이 역공을 가할 때마다 국민들은 대규모 항의시위와 언론의 반격으로 '사정혁명'을 전진시키는등 전 국가적 지지하에 부패정치를 청산할수 있었다.
검찰수사가 정치개혁의 원동력이 된 사례는 일본에서도 있었다.
도쿄 지검 특수부는 92년 유통기업 '사가와 규빈'이 가네마루 신 자민당 총재등 정치인 10명에게 21억5천만엔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고 이 스캔들로 이듬해 탄생한 호소카와 총리를 수반으로 한 비 자민 연립정권은 정치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94년 정치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최근 한국판 '마니 폴리테'가 진행되고 있다.
SK비자금에 한정됐던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5대 기업등으로 확산되면서 이를 계기로 한국형 '마니 폴리테'의 전례가 탄생할지 국민들의 눈이 한곳에 쏠리고 있다.
어느때 보다 검찰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졌고 정치권에서도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검은 돈' 관행을 없애자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이번 수사가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마니 폴리테로 평가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자금 수사로 재벌을 건드리게 되면 국민경제 전체에 그 영향이 돌아올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재신임 문제로 대통령이 흔들리고 정치자금 파동으로 정당과 국회가 흔들려 국제적 신인도가 내려갈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사건 수사가 여러가지 이유로 법과 정의의 잣대를 벗어난다면 한국 정치는 더 큰 불행을 불러 올수밖에 없다. 국민을 이끌어가야 할 정치인이 걸핏하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도둑으로 몰리는 현실은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원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한국 정치 현실에 더 이상 기대할것이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
이제 한국판 마니 폴리테의 성공 여부는 검찰의 소신에 달려있다.
검찰은 정당간 형평성 문제에 신경쓸것이 아니라 수사의 투명성과 신속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사가 길어질수록 정치권의 압력이 점점 거세질 것이고 경제가 망가진다는 대기업들의 아우성 또한 클 것이기 때문이다.
/박승용(사회부 차장)
한국판 '마니 폴리테'
입력 2003-11-0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3-11-0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22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