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학문을 추구하는 미학(美學)의 기준은 '사용가치가 있느냐'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바꾸어 말해 아무리 아름다운 사물이라도 사용가치가 없다면 이는 미학에서 말하는 미(美)의 기본조건에서 일단은 함량미달이란 것이다.
어느 학자가 “비록 못생긴 돼지코도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아름답고, 신체상 핸디캡으로 감출 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은 두꺼운 입술도 입맞춤을 할 수 있어 아름답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아름다움이 사용가치에 절대 무관하지 않음을 빗댄 것이다.
옛말에 '소비는 미덕'이라 했는가. 무조건적인 소비, 충동적이고 분에 넘치는 과소비를 미덕이라고 표현했을리 절대 만무지만 소비자들의 건전소비는 분명 경제활로를 트이게할 '숨골'인 것만은 분명하다. 침체에 빠진 국내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경색된 소비, 내수부진에서 기인된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지난 IMF 외환위기때와 지금의 경기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비를 빗댄 한 약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IMF 당시에는 사람들이 정말 돈이 없어 돼지 저금통까지 들고와 약을 구입하곤 했는데 지금은 소비자들 주머니에서 고액권이 흔히 나오는 데도 약을 사지 않습니다”라며 쓴웃음을 진 표정이 떠올려진다.
만나는 택시기사들은 손님이 없어 사납금을 채우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고, 문방구 주인도 “학생들의 주머니가 텅빈 이런 불황은 처음봤다”며 가라앉은 경기에 한숨을 몰아쉰다. 내수용 소비재 출하와 중소기업들의 소비재 출하가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고 내수에 의존해야 하는 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들은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그들만의 '마이너리그'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 소비지표인 도·소매판매가 11개월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반전하는 등 다행히 경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과 같은 간접지표일 뿐 상황 호전을 예단하긴 아직 이른감이 있다.
비씨카드가 최근 지난해 신용카드의 매출을 업종별로 분석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밌다. 주5일근무제 확산으로 여가활동 등 자기계발을 위한 지출에는 비교적 많은 소비가 이뤄졌다. 지난 2002년과 비교해 골프연습장(19.2%), 골프장(10.6%), 헬스클럽(8.4%) 등의 신장세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한' 소비에는 인색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반면 자동차판매(-38.6%), 가구(-28.7%), 백화점(-22.8%) 등의 매출은 크게 줄어드는 등 일반 소비는 극도로 침체돼 싸늘히 식은 현 소비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류독감과 광우병 파동은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소비심리를 결정적으로 꺾어놨다. 여기서 파생되는 소비침체는 업계로선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다. 닭과 오리고기의 소비촉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업계, 이를 대변하는 음식업중앙회 등이 최근 벌이는 소비촉진 캠페인은 그래서 더욱 애절하다.
더욱이 이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소비가 꼭 막혀버린 답답함을 보다 못한 의사 등도 이들의 소비촉진 운동에 가세할 정도로 소비 호소를 하는 흔치않은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는 공급을 촉진하기 마련이다. 소비가 따라줘야 경제가 살아나고, 특히 산업체생산품 등의 소비는 '경제건강'을 튼튼히 하는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자린고비식의 무조건적인 절약보다는 한발 나아가 적당한 소비를 이해하고 보듬는 미덕이 정말 아쉬운 때다. /심재호(경제부 차장)
美學에 깃든 소비
입력 200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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