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표전이 끝났다. '돈은 묶고 후보자의 입과 발은 풀었다'는 개정 선거법과 정치 자금법, 정당법 아래서 치러진 이번 4·15 총선은 대통령 탄핵이란 사상 초유의 사건(?)이 맞물리면서 선거판이 요동쳤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공방은 정쟁으로 이어져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총선 의미가 다소 빛바랜 측면이 있다. 이렇게 인천·경기지역 61명의 선량들은 '여의도 행' 버스에 올랐다.

금품 선거, 조직 선거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흑색 선전, 상호 비방 등 과열·혼탁 선거 분위기는 여전했다. 후보자와 소속 정당은 외형적으론 선거법을 준수하고 선의의 정책대결을 다짐했지만 사실은 '페어플레이' 보다는 반칙도 많았다. 인천지방경찰청에 따르면 17대 총선과 관련 불·탈법 선거 운동을 하다 적발된 선거 사범은 모두 221건 263명에 이른다고 한다.

16대 149건 192명을 비교할 때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 중에는 '사라졌다' 는 금품·향응 제공이 64건 102명, 사전 선거 운동이 65건에 68명, 인쇄물 배부가 44건 46명, 상대 후보 비방이 34건(명)이나 된다. 사이버 선거 사범도 55건(명)이 넘었다. 돈 안드는 선거를 이끈다는 인터넷이 넓은 정보공유와 빠른 여론 형성등의 순기능을 타고 흑색선전의 장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확인한 셈이다. 직업별 선거 사범에는 법조인이 상공인과 함께 수위를 차지했다. 경기 지역도 비슷하다.

준법보다는 탈법이,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선거운동 기간중 법규위반 행위가 횡행했다면 이제 차분하게 양심과 법의 잣대를 대야한다. 유권자들이 총선 후보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법을 집행하는 검찰과 경찰, 선관위는 다시 한번 선거운동 과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원도 당선 무효형인 벌금 100만원에 조금 못 미치는 벌금을 선고해 당선자들을 구해 주거나 '고무줄' 재판을 진행해 임기를 보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금품·향응 제공 행위는 금액과 상관 없이 엄벌하고 흑색 선전과 상호 비방 등 불·탈법 행위는 엄정하게 형을 선고해야 한다.

지연재판으로 이어지는 잦은 재판 기일 연기나 첫 재판의 고의 지연 등은 없애야 하고 선고는 단기간내에 해야 한다. 전국의 지법, 지원 소속 선거 범죄 재판장들이 종래 법원이 선거 사범에 대해 벌금 80만~90만원을 선고한 것은 적절한 양형이라고 볼 수 없다며 벌금에 구애받지 않고 사건의 자체 양형 적정성을 고려해 양형을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접근했다니 다행이다.

이같은 원칙이 적용될 경우 인천·경기지역 당선 후보 10명 이상이 정식 재판을 받아 이중 일부는 당선 무효가 예상되는 등 17대 국회 벽두부터 파장은 불가피하다. 이번 선거가 당선자의 배우자, 선거 사무장이 처벌을 받아도 당선자 처벌과 똑같은 선거법상 연좌제가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선무효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항간에는 아깝게 낙선된 후보들이 곧이어 실시될 '슈퍼 재선거'에 대비하고 있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일부에선 현실에 맞지 않은 개정 선거법으로 인해 후보들은 유권자 접근이 어렵고 유권자들은 후보 선택에 불편을 느낀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벌써 선거법 개정 논의가 나온다. 하지만 개정 선거법과 정치 자금법, 정당법은 제대로 이뤄 보지 못한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를 실천하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슈퍼 재선거는 또 한번의 경제·사회적 비용의 지출이다. 이는 결코 낭비가 아니다. 시민이 깨끗한 정치를 누리기 위한 필요한 경비이고 돈선거, 혼탁·과열 선거를 근절하는 보약인 것이다. 소중한 '한 표'를 강·절도 한 뒤 '여의도행 버스'에 무임 승차한 선량을 가려 내는 것은 유권자들은 물론 검·경, 법원, 선관위의 의무다. /안영환(인천본사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