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싱가포르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열리게 됐다.
 
지난달 29일 라오스에서 개최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정상회담 후 지난 1월부터 10차례에 걸쳐 진행한 양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음을 선언했다. 싱가포르는 칠레에 이어 한국과 FTA를 체결한 두 번째 나라가 되었다.
 
이번에 타결된 한-싱가포르 FTA는 상품과 서비스, 무역, 투자, 정부조달, 기술표준 적합성 상호인정, 지적재산권 보호, 긴급수입제한제도 발동요건 등 9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특히 양국은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 '민족내부거래'로 인정하여 한국산과 같은 특혜관세를 주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해외에서 판매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개성공단을 통한 남북 거래를 사실상 '민족내부거래'로 인정하는 최초의 국제협정이라는 점에서 향후 남북 경협을 국제화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싱가포르와의 FTA가 공식 서명되고 국회 비준 절차를 거쳐 발효되면,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적 FTA 추진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한-싱가포르 FTA 협상의 타결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싱가포르를 교두보로 삼아 동남아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발판을 공고히 하고 나아가 아세안과 FTA 협상을 벌이는 데에도 탄력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세안은 인구 5억3천만명, 역내 국내총생산(GDP) 6천100억달러로 유럽연합(EU)에 못지 않은 거대한 시장이나 한국과의 교역은 연간 387억달러로 우리 나라 전체 교역의 10%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어서 앞으로 추가 공략의 여지가 매우 넓은 시장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개방경제체제 운용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나라다. 세계 4대 금융시장의 하나이며 6천여개의 다국적기업이 활동하는 세계적 물류 중심지다. 싱가포르와의 FTA는 물류·금융·서비스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양국 기업의 상호 투자도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1960년대 이래로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호랑이'로 일컬어졌으며 개방체제에서 고도성장과 산업구조 전환을 모범적으로 이룩한 나라다. 인구 450만에 국토면적이 서울시와 비슷한 작은 나라이지만 개방체제와 국민의식의 국제화, 국가 전체를 ‘지식의 섬’으로 변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FTA 체결로 싱가포르의 개방형 경제운용 패러다임을 한국에도 적극 전파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무역항인 싱가포르와의 FTA 체결로 우리의 수출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 반면 싱가포르를 경유한 제3국 상품의 우회 수입이 급증할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한-칠레 FTA처럼 농민들의 집단 반발과 같은 심각한 후유증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국내산업에 감당 못할 타격을 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교하여 FTA의 지각생인 우리는 세계적 조류에 뒤지지 말고 본격적인 FTA 시대를 개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의 취약 산업을 순조롭게 구조조정하고 국내 경제를 효율화하며 21세기 우리의 살길을 찾아야 한다. /김형권(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