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사람들에게 주먹밥이 되어주고 갈 길 먼 사람들에게 신발이 되어 주고 아픈 사람들에게 자비의 손길이 되어준 수월(水月). 글자 한자 모르는 까막눈이었지만, 잠 조차 내려 놓은 밤 사이로 깨달음이 찾아왔다. 생사를 요달(了達)하고서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간도 땅 소먹이꾼이 되어 그의 본디 모습을 공양했다. 모든 생명을 자비로 대하며, 이승을 다하는 그날까지 중생에게 바친 그의 불가사의한 삶이 여기 강물에 언뜻 내비친다….”
우리나라 선불교의 중흥조로 꼽히는 경허(1849~1912)스님의 법제자 가운데 행적이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수월(水月·1855~1928)스님의 삶을 담은 책(물 속을 걸어가는 달)이 최근 인천지검 검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인천지검 김진태 2차장 검사.
김 차장은 인천지검을 떠나기에 앞서 후배들에게 '머리가 복잡할 때 읽어 보라'며 이 책을 선물했고, 이 책을 읽어 본 후배들은 어떡하면 이렇게 간절함이 철철 넘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감탄사를 연발하며 극찬하고 있다.
기자도 며칠전 김 차장으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책 머리를 읽어 내려가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필력과 문법은 기자를 아찔하게 했다.
우리 모두에게 두고두고 어두운 밤을 밝히는 한 점 빛이 됐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맺음말이 가슴에 와닿아 이 책을 쓰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김 차장이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지난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국사건에 연루돼 남도 땅 지리산 자락 어느 산사에서 김 차장은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흔이라는 고령이었음에도 이승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평생동안 일을 하여 중생을 부양했고, 마흔해 가까이 불법을 주재하는 조실의 자리에 앉아 한마디 설법도 한줄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언제나 주위에는 선열(禪悅)이 넘치고 법음이 가득 차서 스님이든 속인이든 심지어 동물까지도 환희와 행복에 겨워했다는 이야기였다.
생전에 가진 것은 오직 산과 물과 바람뿐이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마저 거두어 가버려 겨우 반세기쯤 전에 떠난 사람인데도 성(姓) 마저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었다. 김 차장은 이때부터 선방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수월스님과 관련된 일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스님과 인연이 있는 땅은 남김없이 찾아 다니고 남녘의 지리산에서부터 저 만주땅 이곳저곳에 이르기 까지 스님의 삶의 궤적을 되살려 냈다. 이같은 노력은 20여년간 계속됐고 지난 96년 '달을 듣는 강물'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이 나오자 2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후 책이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어 지난 2004년 강릉지청장 시절 다시 손을 봤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월스님의 삶도 대단하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스님의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해 그의 삶을 되살려 놓은 김 차장 또한 남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기회가 있으면 이 책을 꼭 한번쯤 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송 병 원(인천본사 사회문체부 차장)
한 차장검사의 책 선물
입력 2006-02-1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6-02-1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