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덕담 한마디쯤은 하고 넘어가야겠으나 요즘 시류를 보면 한가하게 덕담이나 주고받을 때가 아닌 것 같다. 2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인천시민회의가 지난 1996년부터 토요집회, 미군기지 에워싸기, 674일 동안의 24시간 릴레이 밤샘농성 등의 반환 운동 끝에 16만평에 달하는 부평 미군기지를 2008년까지 되돌려 받기로 했다. 그런데 일제 때 일진회의 주역으로 을사보호조약 체결에 앞장섰던 대표적 반민족 친일파 매국노인 송병준의 증손자 등 7명이 느닷없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이 가운데 우선 2천966평(공시지가 약 62억원)에 대해 지난해 9월 국가를 상대로 서울지법에 원인무효로 인한 소유권 등기말소 소송을 제기, 이미 재판이 4차례나 진행됐다. 이들은 또, 소송에서 승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 가운데 2만평을 아파트 신축이 가능하다는 조건까지 달아 평당 220만원씩 440억원에 매매한다는 계약서까지 가지고 다니며 매각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군기지가 반환되는 데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자들이 지난 2002년 3월29일 미군기지 반환결정이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소송을 제기한 것이 더욱 가증스럽다. 일제시대에는 송병준 등의 친일파가 애국지사들의 재산을 강탈해 가더니, 해방 후에는 이제 그 후손들이 시민들의 참된 노력을 또 한번 강탈하려는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시쳇말로 “우리 민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송병준은 친일 매국노로서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며 일진회를 조직하고 탁월한 처세술과 풍채로 미천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일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다.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기회주의자였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의 전우용 박사에 의하면 원래 부평미군기지 터는 충정공 민영환의 땅이었다고 하는데 민영환의 식객으로 들어갔던 송병준이 민영환의 자결 후 허위문서 작성 등의 수법으로 강탈해간 것이라고 한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논설은 이 일을 두고 송병준을 '주인을 문 개'에 비유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송병준의 후손들은 이미 전국 곳곳에 송병준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땅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경기도 양주시 일대 1천800평에 대한 소송에서는 이미 승소했다는 점이다. 또한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들도 지난 93년 시가 60억원에 해당하는 2천여평을 되찾았다고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 해방 후 우리 나라를 점령한 미군이 전투적 민족주의 세력보다 고분고분한 친일파들과 손잡은 결과다. 해방 후 이승만이 집권하면서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다. 친일파에 대한 청산, 일제에 대한 청산이 전혀 안되고 있는 나라이니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썼다는 김완섭이라는 자는 국회 과거사진상규명에 관한 특위의 공청회에서 “이완용은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한일합방은 우리가 원한 일이다, 김구는 민비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피한 조선왕조의 개다, 일제 때 우리는 민족 전체가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이었다”라고 버젓이 주장하고 있다.
지난 달 29일 국회 예결위 예산조정소위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해온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를 위해 책정된 예산 5억원 전액을 폐기해 향후 이 사업의 추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선심성 지역구 예산은 8천억원이나 늘린 자들이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인 5억원은 삭감한 것이다. 법을 만드는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친일파의 후손인 나라, 이들에게 '반민족행위자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법' 등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것 자체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인지도 모르겠다. /신현수(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상임대표)
친일파 후손들 뻔뻔한 땅소송
입력 2004-01-0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4-01-0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