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월드컵이 열렸던 문학경기장을 찾을 일이 있었다. 평일의 한산한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어머니들이 경기장 주변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고 운동장 한켠에서는 젊은이들이 농구를 즐기며 그야말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이클 동아리에 가입한 아주머니들의 사이클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 건너편에는 인천의 전근대 역사를 상징하는 인천도호부 관아와 향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는 인천의 역사를 배우러 나온 어린 유치원생들이 전통놀이를 배우며 노닐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가로운 풍경을 산산조각 내며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가 일었다. 다름 아닌, 총소리였다. 한번 시작하더니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 소리는 인천도호부 관아와 향교가 자리한 인천의 주산(主山)인 승학산, 그곳에 자리 잡은 예비군부대에서 훈련 때마다 도심을 가르며 서슬 퍼렇게 울려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남구에 출마한 여러 국회의원 후보들은 저마다 도심의 한가운데 위치한 군부대 이전을 지역 주민들에게 공약으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말 그대로 빈 약속(空約)이 되어버렸는지 아직도 소름 끼치는 총성은 계속되고 있다. 예비군부대가 처음 승학산에 자리를 잡았을 당시에는 시 외곽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심이 남동구와 연수구 일원으로 확장되어 이제는 도심의 한가운데 자리하게 됐다. 게다가 인천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천도호부 관아가 새롭게 복원되었고, 잇달아 문학경기장이 건립되어 많은 외지 관광객이 이곳을 찾게될 것이다. 그들이 만약 이 총소리를 듣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전쟁의 상처와 공포를 덧내는 전쟁 관련 시설은 비단 승학산 총성뿐만이 아니다. 50년 만에 군부대가 나가면서 생태평화 공원으로 조성중인 월미공원에는 다시 해군의 과시성 주둔기념물이 연평해전의 승리를 찬양하는 번쩍이는 부조물을 설치하여 공원을 균열시켜 놓았다. 월미도 해안의 벌컨포부대도 월미공원에 이전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중구청에서도 적극 거들고 있다고 한다. 연안부대 친수공간에는 러일전쟁 러시아 전사자 추모비가 우여곡절 끝에 세워지기도 했다. 또 인천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자유공원에는 호전적인 미국장군 맥아더의 동상이 반공주의의 화신으로 40여년을 버티고 있다.
문학산 정상의 군부대도 인천의 역사를 짓누르는 군사시설이다. 인천 사람들의 마음의 진산인 문학산. 그 정상에 인천시민이 올라가지 못한다니. 1950년대 미군 부대가 처음 진주한 이후 지금까지도 레이더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전 오발사고를 일으킨 송도의 미사일부대가 송도신도시 건설을 빌미로 어렵사리 영종도로 이전하는 문제가 오랜 논란 끝에 합의되어 지금 영종도에서는 미사일부대 이전공사가 진행 중이다. 송도의 미사일부대가 이전하면 문학산의 정상에 위치한 레이더부대도 함께 이전해야 하며 영종도의 백운산에서는 레이더부대의 이전부지도 함께 공사 중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문학산 레이더 부대가 이전한다는 소식은 종무소식이고 끝내 잔류한다는 풍문만이 파다하다.
올해 6월15일을 전후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인천에서 남북의 겨레가 한데 어우러져 우리민족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인천에서 멀지 않은 개성에서는 남북의 자본과 노동력이 한데 어우러져 개성공단이 조성 중에 있으며 때마침 인천시에서는 남북교류협력조례를 제정하여 남북 지역간 경제, 문화 교류의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적극적 행보를 시작했다. 민간에서도 ‘우리겨레 하나되기 인천운동본부’가 만들어져서, 북녘 어린이에게 영양이 풍부한 빵을 공급하는 빵공장 건립기금 모금운동을 다채로운 문화운동으로 전개하고 있다.
분단의 대가를 가장 혹독하게 겪은 곳이 바로 인천지역이다. '안보'도 중요하지만, 그 미명 아래 더 이상 낡은 질서가 인천의 도심, 미래의 한가운데 자리할 이유가 없으며, 또 그래서도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상처투성이 전쟁기념물로 분칠된 인천의 도시 이미지를 걷어내고 환한 평화의 미소가 깃든 평화의 도시로 재구축할 때이다. /이희환(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집행위원장)
인천을 남북 교류·협력의 평화도시로
입력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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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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