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론자는 가라! 얼마 전 정부의 장애인 관련 기관장을 공개채용하는 데 나왔던 주장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재활론자가 장애인들의 무지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현실을 틈타 자신들의 전문성을 높인 반면,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이들은 이제 재활의 대상이기 보다 자신들의 인권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 문제를 단지 소비적인 복지 수혜의 대상이 아닌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만이 올바로 풀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지껏 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한 중심에 있었던 이른바 '전문가주의'는 필요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들은 모두 인권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우선 이러한 주장이 왜 나왔는 지를 보자. 그것은 한마디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객체에서 주체로 패러다임이 이동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상당부분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장애인 실업률은 비 장애인에 비해 약 5~6배가 높다고 발표되고 있고,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시행된지 15년이 되어감에도 그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장애인이 사보험에 가입하려고 해도 보험사가 기피하는 상당히 어려운 현실들이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그 모순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그동안 쌓였던 불만은 더욱 거세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아주 기본적으로 수화통역 서비스나 점자투표용구, 이동편의시설 등 조차 갖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적 권리의 보장 수준도 미흡하다. 최저생계비는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으며, 빈곤자 중 장애인은 당연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장애수당(중증 1인당 월 6만원)은 턱없이 낮고 특수교육 시설 등에서는 여전히 알게 모르게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시민됨의 권리가 장애인에게 있어서 짓밟히는 것은 재활론의 입장에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전면적인 시각의 변화가 요구한다.
그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무엇이 인권적 시각인가.
당연히 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때문에 그 해답도 개인의 치료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분리를 전제로 하는 보호적인 개념보다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방향으로 권리가 추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형시설보다는 규모가 작은 그룹홈과 같은 시설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각종 시설비리 문제도 결국 산좋고 물좋은(?) 곳에 위치한 지역사회와 분리된 시설들에서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장애(인) 문제의 해결방안은 사회와 통합을 전제로 하는 개별적이 아닌 사회변화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자명하다. 이것은 결국 장애인이 더 이상 불안하고 불편하며, 그래서 통제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가 뭔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비자 중심주의의 적극적인 대두, 자기결정권의 극대화, 장애인 당사자의 서비스 선택권 중시, 자립생활의 보장 등은 바로 장애인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접근개념들로 다가온다. /김민수(한신대 외래교수·사회복지학)
재활론자는 가라?
입력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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