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태어날 것인가’를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들판에 핀 꽃들도 모두 그렇다. 하지만 사람은 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간절히 원한다면, 스콧 니어링 처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지금 평택 황새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묻히고 싶은 땅, 생명을 주었던 땅을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다.

 국방부가 평택미군기지확장지역으로 발표한 땅에서 나고 자란 그(녀)들은 이미 지난 1953년에도 똑같은 일을 당했었다. 당시 (구)대추리에 살던 주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상황설명도 듣지 못하고 캠프 험프리에게, 미군에게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정든 땅을 빼앗겼다. 일본군 활주로가 소나무 무리를 뽑았고, 미군 활주로가 묘지 봉분을 들어냈을 때, 대추리에 살던 150집 사람들은 도저로 밀어대는 산더미 같은 흙을 피해 쫓겨나 고향땅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엄동설한, 뒷동산 너머 아산만 넓은 뻘만 내려다 뵈는 야산에다 굴을 파고 살아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뻘을 간척하고, 손마디가 부르트도록 땅을 일궜다. 그래서 만든 땅이 지금의 대추리, 황새울 들녘이다.

 그런데 다시 또 떠나라고 한다. 그(녀)들이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자, 349만평에 이르는 강제토지수용 절차를 발표하면서 강제로 또 등을 떠다민다.
 강제 토지 수용에 착수하겠다는 국방부는 2006년부터 ‘말뚝을 꽂는’ 성토작업을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평택 팽성 도두리, 대추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430여일 동안 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대추초등학교부터 기지 확장을 위한 상황실로 쓰겠다고 밝혔다. 주민대책위 간부들을 폭력집회를 선동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대추초등학교 출입금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나를 죽이고 땅을 뺏으라’는 60~70대 노인들을 죽이고서라도 남의 나라 군대에 황새울 들녘을 바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게다가 평택미군기지확장문제는 한반도 평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벗어난 한강이남지역 평택으로 병력을 재배치한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을 위한 일이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CONPLAN 8022)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계획은 ‘한국방어’라는 명분으로 주둔했던 미군을 동북아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 소요사태, 전쟁들에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기 위해 주한미군을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한국 땅을 빌려 미국의 전쟁기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한국은 미군의 대북한 선제공격으로 인해 전쟁의 위협을 받고, 미군의 해외침략전초기지가 되므로 인해, 테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쟁은 일상이 파괴되는 일이다. 병원이 폭파되고 학교가 문을 닫고, 사이렌 소리에 놀란 아기들이 잠들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전쟁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비행기 폭격에 죽고, 시도 때도 없이 공습경보를 피해 방공호를 찾아들어야하는 그런 시간들이 전쟁이다. 조금 확대해서 말하면 우리는 지금, 전쟁 위협에 놓인 한반도의 평화를 평택 팽성읍에 살고 있는 늙은 주민들에게 맡기고 있다. 그(녀)들이 ‘보상도 싫다, 내 죽을 곳에서 내가 살겠다’고 하는 절규를 귀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주민들이 지켜주는 평화에 빌붙어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걸러 먹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팽성 하늘을 날아다니는 집채만한 비행기소음에 귀가 먹먹하게 되면서도 그래도 내 땅을 지키겠다고 눈물 흘리는 그(녀)들의 울부짖음을 듣지 않고 있다.

 지금 황새울로 가야한다. 평택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주민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녀)들이 치켜든 촛불을 이제 나누어 들어 주어야 한다. 돈 몇 푼으로 바꿀 수 없는 인간 존엄의 이유를, 이 땅의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는 황새울 들녘으로 가야한다.
/박 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