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인천광역시청에서는 실로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인천시민들의 각종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활짝 열려 있어야 할 인천광역시청사가 경찰에 의해 완전 봉쇄된 것이다. 때마침 필자는 '인천 신 시가지 경관 용역 전문가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시청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온 용무를 설명해도 그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경찰은 “상부의 지시니 어쩔 수 없다. 들어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연인 즉 인천 시의회가 정기회 마지막 날을 맞아 논란이 뜨거웠던 선거구 획정안에 대한 본회의 처리에 시민 참여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처였던 것이다.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간에 육탄전을 방불하는 정치폭력의 장면을 지긋지긋하게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지역 의회가 그러한 행태를 그대로 흉내내면서 시민들의 출입을 원천봉쇄하고 경찰까지 동원할 정도로 긴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이란 무엇인가. 여·야당이 정책적 차이를 둘러싸고 엇갈리는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 시의원이 거의 전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인천시의회에서 시민들의 방청까지 불허하면서 처리하고자 한 현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민주주의와 여론을 철저히 무시하고, 제 밥그릇만큼은 어떠한 폭력적 방식을 동원해서든 철저히 고수하고 말겠다는 독선과 아집의 조폭적 이권 수호에 다름아니다.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인천시의회는 결국 시민들의 출입을 원천봉쇄한 상태에서 19일 제142회 본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부터 적용되는 '구·군 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정수에 관한 개정 조례안'을 참석의원 26명 중 찬성 25명, 반대 1명의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당초 ‘인천광역시 기초의원 선거구획정 위원회’는 11월25일 법률로 정해진 112명의 기초의원을 인구와 읍·면·동을 고려하되 인구에 60%의 가중치를 두고, 읍면동의 행정구에 40% 가중치를 둬 '4인 선거구' 9곳, '3인 선거구' 15곳, '2인 선거구' 8곳 등 32개 선거구에서 112명의 기초의원을 뽑는 민주적인 획정안을 마련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를 인천시의회는 4인 선거구를 모두 없애버리고 '2인 선거구' 29곳, '3인 선거구' 13곳 등으로 분할해 버렸다. “후보가 난립해 유권자 혼란이 가중되고 주민 대표성이 희박해져 지역 발전을 저해할 것이 우려된다”며 4인 선거구를 저들 맘대로 2~3인 선거구로 분할해 버린 것이다.
서울, 경기를 비롯한 광역 지자체 의회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어렵사리 마련한 획정안을 개악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인천시의회도 이를 그대로 흉내냈다. 이미 중앙선관위에서는 “시·도의회가 자치구·시·군의원 지역구에 관한 조례를 개정할 때에는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획정안을 가급적 수용하되, 이를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의도를 훼손하지 아니하도록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선거구획정안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획정되어야 할 선거구가 직접 이해당사자인 의회 의원들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이러한 사태가 전국의 지자체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이러고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이 치졸한 양당체제 하의 폭력적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앞에서 올바른 지방자치의 실현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기초의회 의원마저도 정당추천을 받아야만 입후보할 수 있는 '개악 선거법'에 더하여, 선거구 획정마저도 지긋지긋한 양당체제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제3의 선택의 기회마저 강제 박탈함으로써 선거에 의한 의회개혁은 물거품이 되고만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사전에 대처하지 못한 시민사회의 태만은 다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지방자치의 종언을 지켜보고 말 것인가.
/이 희 환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민의를 원천봉쇄한 인천 시의회
입력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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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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