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의 한국은 월드컵으로 뜨겁다. 축제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광장은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1997년, 호헌철폐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이들이 달려 나오던 광장을 추억해 본다.
하지만 거리로 쏟아져 나온 붉은 열광속에서, 새벽 2시까지 지하철을 연장운행하는 국가적 지원의 열린 광장에서, 방송 3사를 비롯한 모든 언론의 붉은 도배속에서, 휴대폰 장사들까지 떠들어대는 국운융성의 기회 속에서… 광장은 이제 없다는 생각이 절실해 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광장은 있을지 모르나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평등한 쪽으로 바꿀 수 있는 불온했지만, 새로웠던 역동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TV시청률 90%를 달성한 주역들은 평등하다. 공간절약형 초슬림 디지털 평면 TV로 시청을 했건, 자기 한 몸 겨우 누일 수 있는 쪽방에서 15인치 브라운관으로 토고전과 프랑스전을 시청했건, 그들은 그 순간 평등했다. 문제는 이들에게 닥칠 미래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통과되면 가난한 이들은 병원을, 학교를, 질 좋은 농산물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정규직이라고는 통계로도 찾아볼 수 없는 멕시코처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초슬림 디지털 평면 TV를 만들어서 팔아먹는 이들은 지금보다 더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재앙이 눈앞에 닥쳤는데, 한국의 6월은 박지성의 골앞에서만 평등한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현실의 어려움을 한순간 잊을 수 있는 축제의 마당에서 그런 골치 아픈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말은 없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경쟁과 속도에 밀려 고단하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는 없을 화끈한 반전 골을 기대하는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축구때문에 즐겁고 축구때문에 즐기고 있는 와중에 놓치게 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드는 음모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신 좀 차리자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동안 방송 3사는 87%에 달하는 시간을 월드컵에 할애하고 있다. 방송사 뉴스시간에 월드컵소식이 집중 방송되는 것은 물론이고 월드컵 특집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프로그램 역시 월드컵 선전을 기원하는 멘트일색이었다. 이것은 중앙지나 지방지도 물론이었다. 이 기간, 한국정부는 협상대표단을 워싱턴으로 보내 한미자유무역협정 15개 분과중 11개 분과의 통합협정문을 작성했다. 농업·위생검역·섬유·무역규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공분야를 미국에게 덜컥 내주고 돌아왔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평택미군기지확장예정지역인 팽성읍 대추리의 김지태 이장과 평택대책위의 강상원 집행위원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을 기각했다.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 빠져있는 동안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죽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언제는 그런 일이 없었냐고, 좀 즐기자고 말한다. 언론들이 그러는 것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텔레비전 장사, 휴대폰 장사 좀 하면 어떠냐고 고함친다. 너는 애국심이 없니,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축구를 즐기는데 애국까지 가져다 붙이며 함께 열광하자는 부추김이 부담스럽다. 16강에 들어서 한국을 세계만방에 알려내고 결국 휴대폰을 더 많이 팔았다 치더라도 현재와 미래의 비정규직인 당신과 당신 자녀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터.
그토록 사랑하는 국가가 국민 다수의 삶을 빈곤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어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미군의 미사일, 평택기지로 확대 이전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에 사는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위험앞에서 암시랑토 않는 무관심이 공포스럽다. 축구애국주의의 함성이 울리는 광장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새로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걱정을 넘어 아찔하다.
/박 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축구애국주의가 두렵다
입력 2006-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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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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