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절친한 친구로부터 P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근무하는 P변호사사무실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더니 누군가 변을 화장실 내부 바닥, 변기 등 할 것 없이 여기 저기 흘려 놓고 가서 한여름 화장실에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얼마나 급했기에 저런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고 갔을까,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자기 집 화장실도 아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중 화장실에서 저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P변호사는 화장실을 찾는 사람이 있기 전에 깨끗하게 치워야 한다면서 빗자루와 물통을 가지고 와서 화장실 구석구석을 청소했다고 한다.

P변호사의 직원이었던 친구는 변호사의 청소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화장실이 더러워서 미안하네. 이곳은 내 건물이니, 내가 청소를 해야지 당신에게 청소를 맡길 순 없지”하면서 극구 만류하였다고 했다.

그 후 친구는 P변호사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고 변호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허물이 벗겨지고 자연스럽게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결국 P변호사가 굽힌 것은 단순히 화장실에서의 허리였지만 변호사라는 권위의식을 스스로 낮추고 낮춘 자리에 그 친구의 마음이 들어갈 수 있었던 통로가 마련된 것이었다.

자신을 낮춰 가며 자신을 찾는 수행방법으로 고대 인도에서 유래된 오체투지(五體投地)가 있다. 오체투지는 불교에서 불, 법, 승 삼보에게 올리는 예법으로 흔히 큰절이라고 부른다. 절을 하기 위하여 이마와 두 팔꿈치, 두 무릎 등 다섯 부분을 사용하여 바닥에 엎드려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절대로 오체투지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체투지는 고개를 숙인 겸손한 자세로 자신 내부에 있는 교만을 버려야 만이 진리를 찾는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지금도 은둔의 불교 왕국으로 불리는 티베트의 거리에는 땅바닥에서 오체투지로 해가 질 때까지 조금씩 길을 가는 수행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을 최대한 땅바닥에 낮추고 신을 찾아가는 고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체투지와 같이 불교가 자기 자신과 신을 찾아 깨달음을 얻는 종교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반대로 신이 인간들을 찾아왔다. 절대적인 신의 경지에 있던 기독교의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오히려 스스로 낮아지고 낮아져서 이 땅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며 십자가를 지고 33세의 짧은 나이로 육신의 삶을 마감하였다.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 예수의 부활은 단순한 시체의 소생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증거이자 기독교의 출발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하늘에 오름으로써 예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 깊은 곳으로 침투하여 인류와 더욱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도 현대인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이 난무하고 아무런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무생물적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삶은 죽은 삶을 거부하고 예수처럼 누군가를 위하여 기꺼이 죽는 삶을 살 때, 부활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하늘은 누구나 지상의 삶이 끝나고 나서야 당연하게 옮겨지는 통과의례의 장소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만이 다가갈 수 있는 성스러운 장소인 것이다.

2003 성탄일을 즈음하여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거리에도 2000년 전 예수가 이 땅에서 인류를 향하여 죽음으로 바친 오체투지는 낮아질수록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진리를 부활시키고 있다. /권성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