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가 95년 모델이니, 내년이면 만 10년이 되는 샘이다. 주위 사람들이 내 차를 보면 “이제 바꿀 때도 되지 않았느냐”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차를 애써 바꾸지 않는 것은 필자의 경제적 능력 탓도 있겠지만 차를 운전하고 관리하는데 있어서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오래되었으므로 차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차주의 품위나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단지 부에 대한 자기과시욕 쯤으로 치부할 만큼 사회는 변화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부로라도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닐 수도 있고 옷을 갈아 입 듯이 차를 바꿀 수가 있다. 이용적 가치 면에서도 차는 장소 이동을 위하여 거리를 다니는 마차(馬車)의 개념을 뛰어 넘어 차주의 취미나 직업적인 기호에 알맞게 제작되어 차안에서 얼마든지 숙식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캠핑카나 홈카 등은 장기간의 드라이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생활설비를 갖춘 자동차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레저용으로 인기가 높다. 국토가 넓은 유럽에서는 차를 이용한 레저 활동과 여행의 차원을 넘어 주거용으로서 트레일러를 개조하여 집안 내부 구조를 그대로 장착한 이동식 가옥도 있다.
 
그만큼 차는 문명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사람과 친숙하게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현대 문명은 현실공간에서 사이버로 공간이동을 시작하는 동안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자동차의 원리를 사람에게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동차에 비유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가령 인간의 육체는 자동차의 본체와 같고, 인간의 피는 휘발유와 같고, 호르몬은 윤활유에 해당되며, 심장은 엔진이고, 인간의 두뇌와 정신은 차의 전자시스템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정신을 자연과 인류를 통하여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소산물로 인간 본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흥행하였던 SF 영화 A·I,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등은 인간이 만든 문명으로부터 되레 인간이 파괴되고 멸종위기에 놓인 인류의 미래를 다룬 가상 상태의 영화이지만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거기다가 인간성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를 대상으로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기계인간이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오게 될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의 진단과 고민없이 너무도 태연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의 의식이 문명과 편안함으로부터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동차는 개인과 지역, 국가 간의 거리를 좁혀주었지만 정작 편리함은 교통대란과 사고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고 자동차를 많이 이용할수록 육신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 당뇨, 골다공증 등의 질병은 일정한 거리만 걸어도 예방할 수 있으나 차의 편리함은 되레 만성 고질병으로 나타났다. 한편, 문명은 인간의 최대의 극복 대상인 죽음을 뛰어 넘으려는 기본적 단계로 질병을 타파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문명이 위생을 강조하면 할수록 질병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학자들은 극단적인 죽음의 공포를 주고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는 영장류인 원숭이에게서 발현했고, 사스는 사향고양이에서, 조류독감은 닭이나 오리에서 그 바이러스의 발현지를 추정하고 있다.
 
결국 인류의 생존 전략은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문명을 꽃피우고 있지만 문명은 인류를 향하여 역습을 시작했고, 자연은 반격을, 질병은 저항력이 떨어진 사람들 주변을 맴돌며 돌연변이 신종바이러스로 도처에 깔려있다. /권성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