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 C. 콜로디가 쓴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1883년)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동화이다. 이 동화 속의 주인공인 피노키오는 사람과 같지만 거짓말을 하면 코가 점점 커지는 특징을 가진 나무로 만든 캐릭터인데 다양한 모험을 경험하면서 나중에는 진짜 사람이 된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성추문 사건으로 대배심에서 증언할 때, 1분에 26차례 코를 만졌다고 한다. 당시 이를 근거로 일명 '피노키오 효과'를 다룬 연구 논문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진다는 연구결과는 실제로 거짓말을 하면 코 안의 발기 조직이 충혈돼 코가 부풀어오름으써 무의식적으로 코를 만지거나 긁게 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서 아무리 상대방의 마음을 속일지라도 자신의 마음까지 속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리현상이다.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성실한 태도로 수사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사람과는 달리 공통적으로 정치, 경제인의 표본이라고 할만한 사회적 지위와 헤게모니의 위치에서 누가 보더라도 안정되어 있는 유명인사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체제유지를 위하여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물리적인 힘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이유 없이 죽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상당수 사람들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참혹한 고문의 순간에도 살아서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신념을 숙명처럼 가슴에 새기며 국가의 폭력 앞에서 이빨을 악물었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비리혐의로 수사 당국에서 조사를 받다가 투신자살을 한 유명인사들의 연쇄적 자살풍조는 자신이 국가 체제에 항거하여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목숨 희생하여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고 목숨을 던진 애국열사는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야기된다. 그들은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비리를 끝까지 거짓말로 부정하였지만 예리한 수사의 칼날이 서서히 사건의 베일을 벗겼고, 수심 깊이 가라앉아 있던 사실이 수면 위에 떠오르면서 한평생 쌓아온 공든 탑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벗겨진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은 자신의 양면성 때문에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비난을 당하는 비참한 환상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순간, 참기 어려운 현실 공간으로부터 도피 수단으로 피노키오처럼 커진 코를 감추기 위하여 한강에 몸을 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자살이라는 찰나적 자기 파괴 행위가 밝혀져야 할 진실을 안고 죽음으로써 죄만 살아서 미궁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법당국에서는 피의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최고의 해결방법으로 최후의 자살을 선택한다고 해서 사건이 종식될 수 없다는 것과 죄인은 죽어도 죄는 도망갈 미궁이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규명함으로써 앞으로 이와 같은 무모한 자살 소동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싱그러운 여름이 오고 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졌던 동화 속의 피노키오는 진실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자아를 발견하게 됨으로써 나무토막에서 진짜 인간으로 변하여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이와같이 지금이라도 비리로 얼룩진 유명 인사들이 여름날, 초록 잎새가 투명한 햇살에 반짝이듯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성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