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필자는 북태평양 상에 있는 미국 하와이 주에서 한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전쟁기념관을 관람하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여 두 시간 가량 소요되는 그곳을 향해 달렸다. 차창 밖으로는 사탕수수농장이 끊임없이 펼쳐졌는데 그 농장은 100여년 전, 8천명에 달하는 우리 민족이 목숨과도 같은 조국을 떠나 배고픔을 잊기 위하여 머나먼 이국 땅에 이민을 와서 일군 밭이다. 언어와 풍속이 다른 그곳에서 우리 민족이 온갖 서러움을 당하며 평생 동안 고향을 그리워하며 뼈를 묻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 한 곳이 아려왔다.
 
전쟁 기념관 입구에는 매표소를 대신하여 대형 돌이 있었고 전사한 미군들의 이름과 영혼을 추모하는 글들이 새겨져 있었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이 국비로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돈을 받지 않는 이유가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에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역사적 아픔을 세계 관광객들에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내면에는 다시는 이와 같이 패배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한 의지와 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한인을 통하여 들을 수 있었다.
 
하와이는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360대의 일본 전투기가 태평양을 건너와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90여척의 군함에 일제히 자폭했다. 당시, 일본 전투기 공격에 침몰한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아리조나호를 인양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선체 위에 전쟁기념관을 세웠다고 했다.
 
수중에 가라앉아 있는 아리조나호는 아직도 남아있는 기름을 보글보글 수면 위로 보내며 전쟁의 참상을 증언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기념관 한쪽에는 폭격으로 출항하지 못했던 아리조나호의 집채만한 큰 닻이 패배의 상징으로 흉물처럼 우두커니 놓여져 깊고 푸른 역사 속으로 닻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동양의 작은 섬나라 일본이 서양의 거대한 미국을 1시간 55분만에 패배 시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라도 느끼는 듯 흐뭇해하는 표정이 엿보였지만, 일본의 예고 없는 무차별적 공격과 참혹한 죽음 앞에서 미국 관광객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서 있던 땅, 역시 하와이 왕조가 있던 원주민들의 소유였지만 강대국인 미국이 드나들면서 무력으로 합병조약을 체결하고, 2차 대전이후에는 아예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미국의 마지막 주로 삼아버렸다.
 
현재 미국은 하와이의 전체 인구 중 1% 정도 되는 원주민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복지 정책을 지원해 주지만 일을 하거나 고등교육 이상의 진학을 하게 되면 국가 지원금을 중단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일을 해서도 안 되고 많이 배워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원주민 대부분은 매일 같이 놀고 먹어서 혐오스러울 정도로 비만해진 몸으로 관광객들의 눈에 잘 띄는 해안가에서 무리지어 생활하고 있다. 결국 16세기 초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의 꽃을 피웠던 아메리카 대륙의 영토 주인인 인디언처럼 그들도 미국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국의 신종 노예가 되었다. 민족정신이 사라진 원주민들의 민족 고유 전통은 Made in USA 직인이 찍힌 하와이의 토속 상품으로 전략되고 있었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동맹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유엔에서 등을 돌리자 “강자가 원하면 우방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따라와야 한다”는 식의 '강자 추종의 논리'를 내세우며 드디어 '평화와 평등의 가면'을 벗고 독자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자유와 평등의 상징 미국'이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50년 동안 한국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이라크파병 등 대외적인 간섭은 물론 살인, 폭행, 마약 등 온갖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우리의 안방까지 내준 주한 미군의 가면무도회가 언제 막을 내릴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권성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