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형에 대한 상식이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공개 처형을 해왔다. 이는 사형이 갖는 범죄 억지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죄 집단이 조직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탈조직원을 살해하는 관행도 이러한 상식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처럼 처형의 '상징성’을 고려해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사실 사형은 옛날부터 논란이 많은 형벌이다. 찬성론자들은 사형제도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이며 사회 정의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반면에 반대론자들은 법적 오판이나 공권력의 횡포로 억울한 죽음의 가능성이 있고, 살인을 방지하기 위한 살인을 용인하는 모순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는 의견의 접점을 찾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 영역과도 결부돼 있어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렵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존속시키는 나라보다 폐지하는 나라가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20세기 초에는 베네수엘라, 루마니아, 코스타리카 등 단 3개국만이 사형제도를 법적으로 폐지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여러나라의 과반수인 110개국 이상이 법률상으로 또는 선고나 집행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아직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적지 않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1973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5년마다 사형제도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가장 최근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에 25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다고 한다. 그 전 기간인 1989년에서 1994년 사이에는 21개국이 폐지하는 등 최근 12년 동안 무려 46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이처럼 사형제도 폐지에 갈수록 힘이 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재판에 오류가 있어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가장 발전된 국가라고 평가받는 미국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최근 30년간 100명 이상의 사형수가 무죄로 밝혀져 풀려났다.
 
이 뿐만 아니다. 사형은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미 우리는 일제시대, 한국전쟁, 독재정권을 거치는 동안 사형제도가 폭정과 학정의 수단으로 변질된 역사가 있다.
 
처벌 대상이 사람인 이상, 참회와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실제로 많은 사형수가 수감생활 중에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뉘우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한꺼번에 23명을 사형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 현 추세라면 2008년 말엔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란 분류는 큰 의미가 없다. 제도 자체가 폐지되지 않는 한 사형으로 생을 마감할 이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수형시설에 수감된 60여명의 사형선고자가 '대통령'의 뜻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사형에 대한 어정쩡한 입장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얼마 전 국제 엠네스티는 국회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사형제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사형제폐지특별법안'도 국회에 상정되었다.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도 열리고 있다.
 
1996년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에 대해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시대상황이 바뀌면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사형만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사형제도’에 사형선고를 내리자./정정주(고려대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