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지난 2002년부터 미신고 복지시설 종합관리대책을 수립, 그 동안 인권 및 안전의 사각지대로 인식돼 온 미신고시설 양성화를 추진했다. 조건부 신고제도를 실시해 3년간 유예기간 뒤 시설규제 완화, 800억원 규모의 민간기금을 활용한 시설 증축 등 조치로 미신고시설의 제도권 진입을 지원했다. 유예기간이 끝난 지난 7월 31일 보건복지부는 1천300여 개 미신고시설 가운데 800여 개 시설이 신고시설로 전환됐거나 전환을 준비 중이라며 성과를 자랑했다.

 하지만 조건부 생활시설인 인권확보를 위한 '시설공대위'가 이런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사업으로 전국의 양성화된 조건부 생활시설 21곳을 선정해 500여 명의 생활인 1대1 면접을 시도,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보건복지부와 달리 시설 이용자들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 생활실태와 인권보호 여부를 파악한 것이다.

 필자도 조사에 참여해 인천과 경기도 시흥 등지의 장애인 생활시설 조사를 통해 공통된 특징들을 발견했다. 시설 운영 방식이 개인의 선택권과 삶을 존중하는 것보다 많은 인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설에서 생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정해진 일정에 순종하는 것은 물론 유일한 취미생활인 TV시청도 허락 아래서만 가능했다. 후원물품으로 제공받은 옷은 설사 작더라도 주는대로 입어야 하며, 머리도 그저 관리하기 쉽게 짧게 자르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생활인들은 그릇 하나에 밥과 반찬, 국을 함께 말아줘도, 바지에 오줌 싼다고 음료수를 주지 않아도 단체생활이기 때문에 감수할 몫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권 일괄관리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설 관계자들은 매월 당사자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와 장애수당을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란 이유로 일괄관리 한다고 말했다. 무료시설일 경우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되지만 재활, 의료서비스 제공은 전무했다.

 취업, 자립, 결혼 등에 대한 생활인의 욕구를 무시하고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아 겨우 의식주를 해결하고 하루 종일 방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생활인들 역시 점차 그런 삶에 길들여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기력한 상태로 전락한다는 데 있다. 많은 시설 운영자들은 열악한 재정과 인력난을 호소하며 생활인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정당화하고, 국가기관은 사회복지시설 생활인들을 보호할 책임을 민간에 교묘히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에 따르면 '사회복지시설'은 '사회복지사업을 행할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을 말하며 '사회복지사업'은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국민에게 상담·재활·직업소개 및 지도, 사회복지시설의 이용 등을 제공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미 양성화된 조건부 신고시설에서 동일하게 관찰되는 생활인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고 생활인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계기관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민간기금 지원으로 신고시설 전환을 추진 중인 인천 A시설에선 심각한 생활인 의료 방치 흔적이 발견됐다. 불과 며칠 전 신고시설 전환을 마친 전남 광주의 B시설에선 지역병원과의 유착을 통한 생활인 강제 장기입원, 성폭행 등이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외형적인 조건만 충족하면 그만이라는 지금과 같은 정책대로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관리와 통제가 불가피한 대규모 시설운영을 점차 제한하고 개개인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한 시설의 소규모화, 지역사회 개방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임 진 미(인천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