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새해가 밝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해를 보내고 나면 흔히 쓰는 말이지만 지난 해도 다사다난했다. 특히 많은 연인에게 낭만으로 기억되던 눈이 일부 지역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많이 내려 자연의 재앙이 되어 버렸다. 새해 아침에도 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옅은 빗방울만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난날 눈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을 한 가지씩은 가지고 남몰래 되새기며 웃음 짓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눈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좋은 매개체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그 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 농사가 풍년이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눈이 내릴 때면 종종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도시로 이사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첫눈 내릴 때까지 봉숭아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첫눈을 기다리던 기억이 새롭다. 열두살 무렵에는 아침에 함박눈을 맞으러 나가 저녁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이 가출신고를 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눈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정서가 메마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예전과 같은 감정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승용차가 없던 시절은 눈이 내려도 출근길 빙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눈길에 더럽혀진 자동차 세차는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살기 좋아져 예전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걱정 또한 그만큼 늘었다.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에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던 말씀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저 생각에 그칠 뿐 걸쳐져 있는 어느 것 하나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한다.

 지난해, 호남 및 서해안 지역에 20여일 계속 내렸던 눈은 어려운 농민들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물과 불이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의 위력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폭설로 인하여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사나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철조로 세워진 견고한 집마저 주저앉는 것을 보면서 눈은 결코 낭만적이고도 아름다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즈음 눈만 봐도 겁나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다.

 각박한 오늘의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눈은 더 이상 감상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도 청년실업자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딘가를 헤매고 다닐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한 일상, 점점 심화되어가는 빈부의 격차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거리의 노숙자 등, 어떻게 마음을 열고 눈을 즐길만한 여유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그 옛날 내린 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때로는 어린 시절의 눈을 만나고 싶다. 높고 넓은 회색 빛 하늘에 하얗게 흩날리던 눈. 눈 오는 거리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을 열고 낭만에 잠길 수 있는 감성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단지 잊고 살 뿐이다.
 눈이 온다고 좋아라 하며 마을 어귀에서 눈싸움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잊고 지낸 추억 하나를 만들고 싶다.
/김 정 숙 (수원예총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