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지금쯤은 즐거운 소리로 꽉 차야 할 텐데 온통 난세지음(亂世之音)뿐이다. 어지럽다. 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이 난지 한 주일이 지났다. 민심을 추스르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정치권이 아직도 다툼소리만 크게 울린다. 이젠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 지상파 방송의 토론도 멈춰야 한다. ‘국민적 승리’니, ‘위헌적 위헌판결’이니 하는 궤변도 옳지 않다. 일부 시민단체 등이 헌재의 결정내용에 시비를 거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헌재의 결정을 우회해서 반전의 묘수를 찾는 일은 더더욱 옳지 않다. 재판관을 탄핵하겠다는 여당이 오기를 부릴 일도, 야당이 정치공세의 빌미로 삼을 일도 아니다. 사회적 혼란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이 여야에 있기 때문이다.
 
허탈하기는 국민 모두 마찬가지다. 진취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충청지역 주민의 충격을 어떻게 달래고 지역균형발전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헌법의 수호자는 대통령이다. 심판을 맡은 헌법기구인 헌재와 다투는 모습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길은 행정수도이전 만이 아니다. 소모적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지난 1년여 동안 수도이전문제로 엄청난 국력의 낭비와 국가 재원의 손실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많은 인력과 돈도 투입됐다. 더 이상 이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합의 도출과정이 미숙한 가운데 여야가 적당히 야합한 정치적 산물(産物)을 내놓을 경우 실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경종으로 이해돼야 한다. 민심의 흐름을 반영한 경고이기도 하다. 주요 정책결정은 환경이 성숙하고 여론이 무르익어야 한다. 여론에는 국민 대다수의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은 지역이해를 떠나 국민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이다. 경제력 회복을 위해 아껴진 재원으로 충청권 사회간접자본 투자확대에 쏟아 부어야 한다. 국론분열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절박한 경제를 푸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집집마다 청년실업자가 한 명씩은 존재한다. 말로만 강조할 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회복을 위해 적극 활동에 나서야 한다. 몇 년째 심각한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갖가지 경기부양책을 썼으나 바라던 기업 투자 쪽에는 기별도 없다.
 
17대 국회가 그 이전의 국회와 다른 모습을 보이려면 지금의 정치적 논쟁을 빠른 시일 안에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이른바 ‘4대 개혁입법’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끌수록 민심은 분열될 가능성이 커진다.
 
나라 안팎으로 상황판단을 잘 해서 헤쳐가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 중 하나가 한·미관계다. 예년과 달리 미국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미국 대통령선거도 한 주일 남겨놨다. 국제적인 세력균형의 재편과 한·미동맹 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외교전략을 지체없이 가다듬어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 이런 중요한 때에 허둥대지 말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하나하나 꼼꼼하게 풀어가야 한다.
 
산을 오르는데 여러 길이 있게 마련이다. 수도권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의 정책은 결코 포기돼서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방법을 달리하여 이뤄져야 할 것이다. 헌법은 일상생활에서 기본권을 지켜주는 생활규범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하겠다. /김훈동(수원예총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