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연구기관 등이 몽땅 수원을 떠나는 것으로 확정 발표됐다. 본청은 신행정수도 이전지역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대상에 포함되어 둥지를 버리고 외마디 소리도 못 지르고 갈 모양이다.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전해서가 아니다. 수원은 이 나라 농업과학의 심장부요 농업혁명의 산실이 아닌가. 심장이 날아 가는 데도 어느 누구하나 그 부당함과 재고하라는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앙정부의 정책이라도 수원의 역사요, 문화가 아닌가.
‘대한민국 농업과학연구의 중심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수원’이다. 역사적으로 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 농업진흥과 농업연구는 구한말 1906년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설치되고 그 이듬해 서울대 농대의 전신인 농림학교가 설립되면서부터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799년 조선시대의 정조대왕이 서호, 즉 축만제(祝萬堤)를 축성하고 서둔(西屯)을 설치하여 국영시범농장을 운영한 것이 효시라 할 수 있다. 서둔벌은 우리 농업이 근대농업으로 발돋움한 지 206년이 되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터다.
아무리 먹을거리가 다양화되고 풍족해졌다고 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자원은 쌀뿐이다. 우리 농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하여 지식집약적 농업과 고부가가치 농업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한 시험연구사업에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가 계속 필요하다. 농업이 마치 뉘엿뉘엿 석양이 지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농업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역시 농업이 없으면 불가능한 분야다. 바로 농업은 생명과학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하는 정책은 중요하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수도권의 강점을 떼어 지방으로 옮기는 것도 그럴듯 하다. 그러나 수도권에 밀집되어있는 공공기관을 강제이전 시키는 정책은 선별적이어야 한다. 호떡 나누어주듯 너 하나 먹고 ‘입 담을라는 식’은 재고돼야 마땅하다. 농촌진흥청과 산하 연구기관은 행정이나 사업기관이 아니다. 농업에 관한 비교시험을 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오랜 세월 시험사업을 통해 얻어진 기초적인 통계자료가 중요한 바탕이 된다. 작물의 생리재해나 수량증대 등의 결과치가 한 두 해에 걸쳐 얻어지는 데이터가 아니다. 100여년 넘게 이뤄진 값진 데이터가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당시 식량이 부족할 때, 육종학자들이 다수확 벼품종을 만들어내어 빈곤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던 농업혁명 진원지이기도 하다.
200여년이 넘는 수원 서둔벌은 정조대왕이 화성신도시를 만들면서 농업진흥의 꿈을 펼쳐가던 터전이기도 하다. 이 역시 문화유산이다. 문화는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보고 느끼고 사는 우리 시각과의 교감 속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만나게 된다. 문화는 그것을 산출하는 자와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산물이다. 우리문화는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농경문화는 자연을 일구는 문화요, 생활문화다. 수원 서둔벌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관련 연구기관 이전은 문화사적 측면에서 반드시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지역 이기주의적 요구로 폄하할 문제가 아니다.
/김훈동(수원예총회장·시인)
농업진흥터도 문화유산이다
입력 200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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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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