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지축소에 나섰다. 오는 5월말까지 농지법을 고쳐 농지이용에 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농지를 농업 이외의 목적으로 쉽게 전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제2의 농지개혁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다. DDA(도하개발아젠다) 농업협상과 쌀 개방 재협상을 앞두고 농지축소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농업생산을 감축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전국에는 186만㏊의 농지가 있다. 농림부는 그 중의 57%인 농업진흥지역 106만㏊를 제외하고 나머지 80만㏊는 전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논 면적 114만㏊중에서 30%는 줄이겠다고 한다. 80만㏊만 남겨도 쌀 자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건설교통부는 농업진흥지역의 5%에 해당하는 도시계획지역내의 농지는 개발을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쉽게 말해 농지의 절반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농지전용을 촉진하기 위한 갖가지 방안도 내놓았다. 도시자본을 끌어들인다며 비농민의 주말농장 허용규모를 300평에서 900평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또 농업진흥지역 밖에 있는 농지에 대해서는 전용허가권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겠다고 한다. 이와 함께 농지신탁제도를 도입하고 농지전용시 부과하는 농지조성비 기준도 낮추겠다는 것이다.
금년내에 쌀 개방 재협상을 끝내야 한다. 1993년 12월 우루과이 라운드를 타결할 당시 한국쌀의 개방문제는 10년 후에 재협상한다는 조건으로 MMA(최소시장접근)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재협상이 어떤 방식으로 타결되더라도 소비수요의 4%인 현재의 의무수입량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만약 그것이 10%로 늘어난다면 300만섬이 수입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쌀 자급시대는 끝난다는 소리다.
쌀 개방에 대한 현실적인 묘안은 없다. 국내 쌀값은 수입산에 비해 5배 가량 비싸 가격경쟁력이 없다. 그렇다고 농림부 방침대로 농지축소를 추진하는 한편 영농규모를 확대한다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농지축소는 오히려 규모확대를 저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농지축소가 지닌 심각성은 수입확대를 촉진하여 사실상 농업포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업 경쟁력이 취약한 원인은 농지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인구는 많은데 국토는 좁다보니 땅값이 비싸 생산원가가 높은 것이다. 그런데 쌀 시장이 개방된다는 이유로 농지를 줄이면 쌀값이 더 올라 경쟁력을 더 잃는다. 농업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농지는 절대적인 생산요소이다. 농지가 없는 농업은 있을 수 없다.
식량자급률이 26.7%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 농지의 절반을 줄인다니 기초식량마저 자급을 포기하여 민족의 생존을 식량메이저에게 맡기자는 처사이다. 유럽선진공업국의 식량자급률을 보자. 프랑스 222%, 영국 125%, 스웨던 103%, 이탈리아 80% 등으로 높다. 전쟁을 겪으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깨달아 항구적인 대비체제를 구축했다는 증거다.
쌀 소비량이 점점 줄고 쌀이 남아도는 것은 사실이다. 재고미 중에는 매년 140만섬씩 들어온 의무수입량이 누적되어 포함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잉재고는 한두 차례 장마나 가뭄이 들어도 해소된다. 흉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기상이변이 심하다. 또 국가발전전략으로서 통일시대에 대비하는 식량정책이 중요하다.
한번 훼손된 농지는 복구가 어렵다. 당대가 모든 토지를 개발할 권리는 없다. 휴경(休耕)을 통해 후대의 몫도 남겨 놓아야 한다. 농지에도 흐름이 있다. 논밭에 난개발이 이뤄지면 흐름이 끊겨 남은 땅도 못쓰게 된다. 지구적인 현상인 산업화-도시화가 급속한 농지잠식을 가져와 식량부족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농지정책은 민족의 장래를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김영호(시사평론가)
농지축소론의 함정
입력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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