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수난시대다. 대선자금이 꼬리를 드러내면서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쇠고랑을 찼다. 얼마나 더 많이 감방으로 끌려갈지 모를 일이다. 이제는 세상이 바꿨나 보다. 부패불감증에 걸렸던 국민들이 질타의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 노성(怒聲)도 지쳤는지 이 김에 정치판을 확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나라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국회일 것이다. 대선자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러 비리사건에 연루된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서류가방, 사과상자로 돈을 챙기더니 그것도 성에 안 차는지 ‘차떼기’로 해먹었단다. 돈벼락 맞을 때는 신났겠지만 교도소 담벼락 밑에 누운 느낌이 드는 나리들이 많을 듯 싶다. 여의도 의사당은 안양교도소 분소라는 말이 실감난다.
4월 총선거에서는 ‘물갈이’가 대세일 것 같다. 정치권이 공멸의 위기감을 느꼈는지 갖가지 변신을 시도하며 생존본능을 드러낸다. 공천심사위원회에 외부인사를 받아들여 참신한 인물들을 발탁하겠단다. 국회의원을 오래 지내다 보면 때묻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다선의원의 입지가 좁아져 불출마 선언이 늘고 있다. 그것은 좋은데 연령을 심사기준의 절대적 가치로 삼는 추세다. 이미지만 중시하다보니 젊음이 최고라고 떠드는 것이다.
정치권이 하는 꼴을 보면 한심하다.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천박한 세태에 편승하여 서로 젊고 이쁜 사람을 모시려고 혈안이다. 이 나라에서는 두터운 나이테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속은 필요 없고 겉만 멋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TV화면에 많이 비친 사람이라면 무조건 영입순위 1위다. 방송사 간판을 정당에 달아야 할 판이다. 정치인을 알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미디어정치(mediacracy)의 뜻을 거꾸로 아는 모양이다.
어느 정당은 어떤 공부 잘한 20대 여성에게 전국구 1번을 주겠다고 나팔을 불었다.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아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을 인기인으로 알고 선거를 경염대회(競艶大會)로 아니 이따위 발상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사오정’이란 말이 나올 판이다. 총선시민연대가 낙천운동에 나서 이래저래 인적교체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수직적 인적교체를 정치개혁으로 이해한다면 그들부터 정치현장에서 퇴장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되려면 거기에는 최소한의 자질과 자격을 구비해야 한다. 도당정치(盜黨政治-kleptocracy)가 문제가 되는 시대적 상황이라면 도덕적 우월성을 으뜸가는 덕목으로 꼽아야 한다. 병역의무-납세의무를 다 했는지 재산형성의 과정은 투명한지 전과사실은 없는지 따져 봐야 한다. 그것을 안보고 또 다른 도둑을 의사당으로 보낼 수 없지 않는가? 또 의정활동을 할만큼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한지도 알아봐야 한다.
국회의 존립근거는 입법권과 예산의정권에 있다. 법을 만들려면 최소한의 법률지식이 필요하다. 예산-결산을 심의하려면 기초적인 경제지식을 가져야 한다. 분야별 전문성도 곁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력이 중요하다. 이것은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축적된 경륜에서 나오니 아무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그런데 엉뚱한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니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사회구성은 고령화하는데 고용구조가 급속히 연소화하여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마저 연소화하면 연령계층간의 간극(間隙)은 더 심화된다. 의회제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달해 왔다. 씨족사회-부족사회에서는 장로회의가 의사를 결정했다. 현대 의회정치의 모태는 로마 공화정의 원로원이다. 선진국에서 상원을 두고 있는 것도 그 사회가 축적한 경륜과 지혜를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유권자가 깨어나 나이를 떠나 자질과 자격을 따져 국민의 대표를 뽑을 줄 알아야 한다. /김영호(시사평론가)
수직적 인적교체의 위험성
입력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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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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