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보통 겨울에 오른다. 북반구가 겨울을 맞아 난방수요가 늘어나면서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무더위를 잊은 채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뉴욕시장에서 최근 1배럴당 44달러를 넘었으며 50달러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고유가의 장기화는 경기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킬 우려가 크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유가폭등의 문제점이나 간파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유가폭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러시아의 석유재벌 유코스가 탈세혐의로 존폐위기에 처한 데 있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내년 초까지 증산을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다 이라크 사태가 악화되고 있고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테러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산유국인 아르헨티나의 정정불안도 유가폭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가 장기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 들어 하강세를 보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줄곧 30달러선에서 진폭을 유지해 왔다. 지난봄에는 OECD가 4월부터 생산량 감축을 강행할 의사를 밝히자 1배럴당 35달러 전후로 고공행진을 지속했었다. 미국의 재고량 감소가 수급체제에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달러화의 약세를 틈타 투기자금이 석유시장에 몰려 가격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세계경기 호전에 따른 수요증대로 앞으로도 국제유가는 강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20년만에 호황을 누리고 있고 일본이 13년만에 가장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EU의 중심축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중국은 지난 20년 이상 고도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아시아 3개 신흥시장의 석유수요가 앞으로 6∼10년 사이에 2배로 증가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북미지역의 1인당 연간 석유소비량은 30배럴인데 중국은 고작 1배럴에 불과하다. 고속성장을 누리고 있는 13억 인구의 소비증대가 석유시장에 미칠 파급영향은 막강하다. 아시아의 1일 석유수요는 현재 3천500만배럴 수준인데 향후 10년 이내에 5천만배럴로 늘어난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수요급증을 충족하려면 가격앙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다 브라질과 러시아가 경제대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석유정책을 보면 이 나라에 과연 국가발전 전략이 있는지 묻고 싶다. 고유가 시대가 도래했지만 역대 정권이 무대책으로 대응해 왔다. 원유가가 급등하고 경제불안이 고조되면 마지못해 대증요법적인 대책을 내놓을 뿐이다. 에너지의 97%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장기적-체제적인 에너지 수급계획도 없이 미래의 충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다. 이것은 역대정권이 국가운영에 관한 확고한 철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에너지 수입액은 380억달러나 된다. 경제규모는 세계 12위인 나라가 석유수입은 세계4 위이다. 영국 이탈리아 같은 산유국보다 소득이 3배 이상 많은 일본보다도 석유를 더 많이 쓴다. 생활주변을 돌아보면 정부, 기업, 가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경제주체가 정말 흥청망청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국제유가가 1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연간 8억달러의 추가부담이 발생한다. 유가인상은 연관산업-제품에 대한 파급영향이 막대하여 경제전반에 치명타를 준다. 비산유국의 에너지정책은 소비수요 관리가 최선책이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낭비형 생활구조를 절약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절약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다소비형 생활구조-산업구조에 중과세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서둘러 뜯어고쳐야 가능하다. 이같은 에너지 정책은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대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시급하다. /김영호(시사평론가)
석유위기에도 무대응인가
입력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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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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